지난해 8월 에볼라가 다시 창궐한 후 1,1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한 민주콩고에서 한 의료진이 의료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콩고민주=EPA 연합뉴스

치사율이 60%를 넘나드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퇴치를 위해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에서 사투를 벌여온 의료진이 최근 들어 자신의 신분을 감춰야 하는 처지가 됐다. 지난해 8월 에볼라 재창궐 이후 급속한 확산을 서방의 음모 탓으로 여기는 현지 민병대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0일(현지시간) “지난해 8월 에볼라 감염이 다시 확인된 후 현재까지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민주콩고에서 의사들이 수술복 입기를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볼라 퇴치를 위해 민주콩고에 머무르고 있는 의료인들은 폭력의 두려움 속에 흰 가운 대신 평상복을, SUV 차량 대신 눈에 띄지 않는 오토바이를 이용하고 있다. 세계적 원조단체인 국제구조위원회(IRC)의 타리크 리벨 긴급대응국장은 “감염자를 치료해온 의사들이 자신의 신분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현지 주민들 사이에 에볼라를 퍼뜨린 주범이 외국인 의료진이라는 불신이 퍼져 있고 이를 빌미로 민병대를 비롯한 무장세력이 폭력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볼라가 다시 확산하면서 최근까지 민주콩고에선 1,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지난 3월 전염병 전문의학지 ‘랜세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지 주민의 45.9%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금전적 이익을 위해 날조됐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인식은 폭력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에볼라 창궐지인 부템보의 한 치료센터가 습격을 받아 수 명의 의료진이 숨졌고, 3울에는 일주일 새 두 차례나 치료센터를 공격당한 국경없는의사회(MSF)가 결국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이달 들어서도 에볼라 감염 사망자의 시신을 묻던 WHO 관계자가 민병대의 공격을 받는가 하면 의료진의 임시 거처 주변에서 치안부대와 민병대 간 총격전이 벌어져 의료진의 활동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WTO)에 따르면 의료진을 상대로 한 공격이 올해에만 119건이 발생했고 사상자가 85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민주콩고 내부의 정치적 갈등 해소를 촉구했다. 로버트 레드필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우리는 이번 사태의 복잡성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민주콩고에 파견한 대응 인력을 17명에서 40명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WHO 긴급대응팀을 이끄는 마이클 라이언 박사는 “의료진의 활동을 돕기 위해서는 민주콩고 대통령과 야당 지도자들, 부템보의 종교 지도자, 부족장들 간 대화가 절실하다”면서 “사회 전체가 나서지 않으면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권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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