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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2막!] 국내 첫 여선장에서 문화해설사로… “태안은 매일이 새롭죠”

입력
2019.05.22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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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태안 문화관광해설사 박은서씨 “9년째 일하지만 외울게 많아 늘 공부해요” 

박은서 문화관광해설사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충남 태안군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가끔 서울에 가지만 하룻밤을 채 있지 못하겠어요. 공원도 아름답고 고궁도 예쁘지만,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히거든요.” 태안=배우한 기자
박은서 문화관광해설사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충남 태안군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가끔 서울에 가지만 하룻밤을 채 있지 못하겠어요. 공원도 아름답고 고궁도 예쁘지만, 왠지 모르게 숨이 막히거든요.” 태안=배우한 기자

충남 태안군 안흥성은 내륙에서 신진도로 들어서는 곳에 있다. 작은 마을을 둘러싼 성곽은 1655년 서해안 방어를 위해 만들어진 진성(鎭城)이다. 조선시대 명ㆍ청에서 온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성안 마을 사람 대부분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어, 낮에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몇몇 집은 주인 없이 방치돼 있다. 9년째 이곳을 지키며 매일같이 외지인을 반기는 사람이 있다. 태안 문화관광해설사 박은서(62)씨다.

박씨는 태안 출신이 아니다. 그는 30세까지 서울에서 살았다. 1979년 친구들과 태안 여행을 온 뒤 풍광에 반해 정착을 결심했다. 당시 가족 등 주변의 반대가 강했다. 그간의 삶을 포기하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혈혈단신으로 가겠다는 그의 뜻을 이해해 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박씨는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잡았다. 30여년이 흘렀다. 박씨는 이제 누구보다도 태안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안흥8경은 옛 기록에도 있을 정도로 유명했어요. 오감을 써야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감성적인가요.” 최근 안흥성 어귀에서 만난 박씨는 태안의 자랑거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야기꾼이 풀어놓는 성곽 곳곳의 역사는 눈과 귀에 쏙쏙 들어왔다. 성곽을 걷던 중 마주할 수 있던 태국사의 종소리도 안흥8경 중 하나였다. 종은 이제 존재하지 않지만, 박씨는 마치 그 소리가 지금 들리는 것처럼 거침없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박씨는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상상으로라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관광해설사”라며 “꽃이 피지 않은 나무에도 꽃을 피게 하는 마술사 같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은서 문화관광해설사가 14일 충남 태안군 안흥성에서 성곽에 적힌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태안=배우한 기자
박은서 문화관광해설사가 14일 충남 태안군 안흥성에서 성곽에 적힌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태안=배우한 기자

박씨는 2001년부터 문화관광해설사(당시 문화유산해설사)를 꿈꿨다. 태안에 대한 애정이 누구 못지 않다고 자부했다. 자격 요건이 까다로웠다. 당시에는 모집 공고도 좀처럼 올라오지 않았다. 박씨는 10년 기다림 끝에 군청에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박씨는 “하루 5만원에 불과할 정도로 보수가 작고 생각보다 일이 힘들다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며 “교통비를 지원받으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여행을 다닐 수도 있고, 매일 공부를 해야 하니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태안 천리포수목원에서 사계절 피는 꽃을 외우고, 안면도 쥬라기공원에 전시된 공룡의 긴 이름을 익히는 것도 문화관광해설사의 업무다.

박씨는 유람선 선장이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선장으로 당시 매스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박씨는 1994년부터 17년 간 매일같이 태안 앞바다를 항해했다. 바쁠 땐 하루 8번까지 유람선을 운행한 적이 있을 정도로 베테랑이다. 박씨는 “바다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배였기에, 자연스레 선장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 전에는 태안의 한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봤는데, 처음에는 아이를 상대하다가 어른을 상대하면 일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그런데 완벽한 착각이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장 도전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오랜 기간 ‘여자가 배를 타면 재수없다’는 속설과 싸워야 했다. 여러 관공서를 설득하는 일도 지난했다. 뱃사람을 무시하는 일부 공무원의 편견이 박씨를 특히 지치게 했다. 그때마다 그는 부산 해안수산연구원에서 구한 법전을 한 줄 한 줄 외우며 실력을 쌓았다. 결국 관공서도 뱃사람들도 박씨를 인정하고 호의적으로 대했다. 그는 “예전과 달리 전자동으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항해를 잘 할 수 있다”며 “자동차 운전보다 더 쉬운 것이 항해기에, 안전수칙만 잘 지킨다면 선장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말했다.

박씨의 직업은 사는 내내 바뀌어왔다. 최근에는 이직이 능력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박씨 또래의 인식과는 다르다. 그는 선장 퇴역을 앞두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자격증을 9개나 취득했을 정도로 매사에 의욕이 넘친다. 그만큼 박씨는 제 2의 인생, 제 3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는 “누군가는 삶이 지루하고 답답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태안은 매일이 새로운 곳”이라며 “태안에 내려가는 것을 가장 반대했던 친구가 지금은 옆 동네에서 살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씨는 물러서야 할 시기도 잘 안다. 자리 욕심을 부리지 않는 태도가 박씨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욕심이 과하면 지금껏 살아온 삶이 형편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씨는 지난해 문화관광해설사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마음 먹기에 따라 평생 문화관광해설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당시 그는 단호했다. 고민 끝에 마음을 바꾸었으나, 지금도 마음속으로는 정년을 70세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선장을 그만 둘 때도 자외선에 의한 시력 저하라는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였다. 박씨는 “스스로 몸이 불편하거나 기억력이 떨어져 남들에게 뒤쳐진다고 느낄 때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며 “지금껏 멋지게 살아왔는데 일 욕심이 그간 쌓아온 것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씨가 생의 마지막 일로 꼽는 것은 고구마 순을 빈곤국가에 보내는 것이다. 구황작물로 기근 문제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5년 전부터 순을 북한에 보내며 시작된 자원봉사가 이제는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까지 번지며 크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구마가 자라지 않는, 중앙아시아 국가 키르기스스탄에 순을 보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태안군이 북한의 군 하나를 담당해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예요. 문화관광해설사 은퇴 이후에는 죽을 때까지 봉사를 할 것 입니다.” 박씨의 도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태안=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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