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서 대규모 회고전 
박서보 화백이 16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그는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전쟁의 상흔으로 동료 작가들이 스러질 때도, 반정부 화가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을 때도 앞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책을 읽고 또 버리며 변화를 좇았고, 한국적인 것에 천착하며 세계와의 조화를 꿈꿨다. 그를 칭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전위 미술의 기수, 단색화 거장…. 어떤 수식이 붙든 그의 이름은 한국 현대 미술이 빼놓을 수 없는 역사가 됐다. ‘묘법(描法)’으로 국ㆍ내외에서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박서보(88) 화백 이야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 종로구 서울관에서 박 화백의 작품 세계를 되짚는 대규모 회고전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열고 있다. 그의 작품을 시기 별로 5가지로 나눠 조명한다. 1950년대 ‘원형질’ 부터 2000년대 ‘후기 묘법’, 그리고 올해 신작 2점까지 160여점이 전시된다. 16일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박 화백은 “숨겨두고 싶은 과거까지 내 삶을 모두 드러낸 전시”라며 “마치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박서보 화백의 '원형질 No.1-62'. 쓰레기통에서 부숴진 기계 부속, 버려진 옷가지 등을 주워 꿰매 붙인 후 페인팅 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 위엔 버려진 스타킹을 붙이고 불을 그을려 마치 화상으로 죽은 인물처럼 표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박 화백은 한국 화단의 이단아였다. 1950년 전후 유일한 화가 등용문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여러 차례 입선하고도 기성 화단에 의탁하지 않았다. 국전의 권위적 행태에 불만을 가졌고, 1956년엔 반(反) 국전을 선언하며 여러 화가들과 독립전을 이끌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회화 No.1’로, 1958년 한국의 첫 앵포르멜(예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감정을 중시하는 추상미술) 작품으로 기록되며 미술계를 흔들었다. 1962년엔 전쟁의 파괴와 절규를 형상화 한 콜라주 작품 ‘원형질’을 내놨는데, 당시 프랑스 일간지 ‘레자르’ 표지에 실리며 서양에도 이름을 알렸다.

박 화백은 그러나 안주하지 않고 실험을 거듭했다. 1960년대 후반엔 다양한 형식에 도전했다. 서양의 옵아트, 팝아트를 한국의 오방색과 엮은 ‘유전질’ 연작과 인류의 달 착륙과 무중력에 영감을 받아 붓을 사용하지 않고 스프레이로만 그린 ‘비키니 스타일의 여인’이 이 때 나온 작품이다. 사람이 빠져 나가고 옷만 남은 형태의 ‘허상’ 시리즈는 당대에 보기 드문 설치 작품이었다. “’원형질’을 완성하려 스프레이를 뿌리면서 폐병을 얻었어요. ‘허상’을 만들며 옷을 내 몸에 붙였다 떼는 과정에선 피부병도 걸려 봤고요. 그렇지만 한 번도 지치지 않았어요. 하여튼 남이 하는 건 하기 싫었으니까.”

박서보 '묘법 No.080618'.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현재의 박 화백을 있게 한 ‘묘법’은 그에겐 수신의 도구다. 박 화백 화업의 상징이 된 묘법은 한지 혹은 물감을 손과 도구로 문지르거나 긁어 일정한 구조를 만드는 방식이다. 집중력을 응축해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상당한 지구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초기엔 수많은 연필 선으로 이룬 묘법, 중기엔 손가락 모양이 묻어나는 지그재그 형태의 묘법, 후기엔 간결한 선으로 이뤄진 묘법으로 형태를 발전시키며 작품 세계를 굳혔다. 그의 묘법 연작은 국ㆍ내외 경매에서 수십억원에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박 화백의 감상은 어떨까. “디지털 시대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자신이 없어요. 다만 통찰은 해 봐요. 아날로그 시대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캔버스에다 모두 토해 놓죠. 디지털 시대에는 안 돼요. 지구가 스트레스 병동이 돼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림이 관람객들의 스트레스를 빨아들여야 해요.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라, 흡인하는 그림이어야죠. 그림을 보면 편안하고 안정감을 찾을 수 있게 말이에요.”

박서보 신작 '묘법 No.19022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답게, 박 화백은 신작 2점도 선보인다. 분홍빛 캔버스에 수많은 연필 선을 그은 ‘묘법’ 연작이다. 2009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품 채색을 해왔지만, 이번 신작들은 오롯이 자신의 손으로 완성했다. 박 화백은 “신작을 위해 몸을 일으켜 세우고 몇 시간이고 선을 긋다 보면 나무토막처럼 몸이 굳어질 때가 많았다”면서도 “이 과정에서 전에 없는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 얼마를 준대도 팔지 않을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전시는 9월 1일까지 열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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