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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일본에서 배운다] 세금 한 푼 안 쓰고 세운 새 구청, 도쿄 랜드마크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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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일본에서 배운다] 세금 한 푼 안 쓰고 세운 새 구청, 도쿄 랜드마크로 부활

입력
2019.05.21 04:40
수정
2019.05.21 11:1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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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마구, 구청사 부지 임대료로 일본 유일 아파트 일체형 청사 건립

구청사 부지엔 애니메이션 특화 문화공간 ‘하레자 이케부쿠로’… 내년 완공

도라노몬힐스 ‘지하도로 위 초고층빌딩’ 합법화해 유휴공간 활용도 높여

일본 도쿄의 첫 번째 도시재생 성공 모델로 꼽히는 롯폰기 힐스의 모리타워 전망대에서 찍은 시내 전경. 내년 올림픽을 앞둔 도쿄 시내 곳곳은 대규모 도심 재생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강지원 기자
일본 도쿄의 첫 번째 도시재생 성공 모델로 꼽히는 롯폰기 힐스의 모리타워 전망대에서 찍은 시내 전경. 내년 올림픽을 앞둔 도쿄 시내 곳곳은 대규모 도심 재생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강지원 기자

일본은 강력한 도시재생 정책을 추진해 왔다. 20세기 말 버블경제 붕괴가 초래한 장기 불황과 사회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용적률 상향, 인ㆍ허가 절차 간소화, 세제 혜택 등을 골자로 하는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2002년 마련한 것이 시작이었다. 각종 지표로 보면, 일본의 도시재생은 성공적이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도시재생 지역 62곳에서 총 7조엔(약 76조 원)의 투자가 일어났고, 일자리 133만개가 창출됐다. 규제를 완화해 민관 협업을 적극 활용한 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2011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개정해 도시재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전국 13개 지역에서 도시재생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은 한국에도 당면 과제가 됐다. 정부는 2022년까지 5년간 50조원을 투자, 전국의 낙후지역 500곳을 선정해 재정비한다는 내용의 ‘도시재생 뉴딜’ 정책을 지난해 발표했다. 현재로선 한국의 도시재생은 중ㆍ소규모 근린 재생에 그치고 있다. 규제가 촘촘하고 관련 법ㆍ제도가 미비한 것이 큰 이유다.

일본 도쿄 도시마구의 새 청사와 미나토구의 초고층 빌딩인 도라노몬힐스는 도시재생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히는 곳이다. 최근 두 곳을 찾아 한국 도시재생에 시사하는 바를 짚어 봤다.

일본 대표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설계한 도시마구신청사의 전경. 저층은 구청으로 고층은 아파트로 사용하는 일본 첫 ‘아파트 일체형 관공서’이다. 저출산 여파로 폐교한 초등학교 부지에 옛 구청 부지 임대료로 세금 한푼 안 들이고 지었다. 강지원 기자
일본 대표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설계한 도시마구신청사의 전경. 저층은 구청으로 고층은 아파트로 사용하는 일본 첫 ‘아파트 일체형 관공서’이다. 저출산 여파로 폐교한 초등학교 부지에 옛 구청 부지 임대료로 세금 한푼 안 들이고 지었다. 강지원 기자

◇ 세금 안 쓰고도 랜드마크로 거듭난 도시마구 새 청사

도쿄 북서쪽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인근에는 내년 초 완공을 앞둔 ‘하레자 이케부쿠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3,619㎡(1,095평)의 부지에 공연장, 전시장과 상업시설, 사무공간 등을 갖춘 높이 158m의 33층짜리 건물 세 동이 솟아오를 예정이다. 주변 공원 4곳도 함께 정비 중이다.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 지역은 도쿄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특화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연간 65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것으로 추산된다. 다카노 유키오 도시마구청장은 한국일보와 만나 “이케부쿠로 거리는 예술가들이 실험적 문화 활동을 해왔던 곳으로, ‘이케부쿠로 몽파르나스’라고 불리기도 했다”며 “이런 전통을 계승하는 취지의 도시재생을 통해 도쿄를 새로운 국제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인근 도시마구청사가 있던 자리에 내년 초 33층짜리 세 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문화공간 ‘하레자 이케부쿠로’가 들어설 예정이다. 도시마구 제공
일본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 인근 도시마구청사가 있던 자리에 내년 초 33층짜리 세 개 동으로 이뤄진 복합문화공간 ‘하레자 이케부쿠로’가 들어설 예정이다. 도시마구 제공

‘하레자 이케부쿠로’가 들어서는 부지는 도시마구 구청이 있었던 곳이다. 1961년 준공된 옛 청사는 도쿄의 23개 구청 청사 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1990년대 청사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했다가 만성 재정난으로 무산됐다. 구의 재정 적자는 1999년 872억엔(9,4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심각했다. 재정 상태가 개선되면서 도시마구는 2006년 청사 신축을 추진했다. 그래도 세금을 쏟아 부을 순 없었다. 세금을 투입하지 않고 새 청사를 짓기 위한 묘안을 찾다가 민간 부동산개발업체인 도쿄빌딩과 손을 잡았다. 옛 청사 부지를 도쿄빌딩에 2091년까지 장기 임대해 주고, 임대료 191억엔(약 2,000억원)을 한꺼번에 받아 새 청사 건립 비용으로 쓰는 방식이었다. 옛 청사에서 남쪽으로 700m가량 떨어진 초등학교 폐교 부지를 청사 부지로 마련했다. 야마구치 마코토 도시마구 도시계획과 계장은 “부지 매각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50년간 사용한 옛 청사 부지에 구민들의 애착이 강해 부지 소유권을 매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새 청사 ‘도시마 에코뮤지타운’은 일본 유명 건축가인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가 ‘나무’를 주제로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 독특한 외관으로 해외관광객들도 찾는 도쿄의 랜드마크가 됐다. 도시마구 제공
새 청사 ‘도시마 에코뮤지타운’은 일본 유명 건축가인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가 ‘나무’를 주제로 친환경적으로 설계했다. 독특한 외관으로 해외관광객들도 찾는 도쿄의 랜드마크가 됐다. 도시마구 제공

◇구청과 아파트 공존하는 ‘아파트 일체형 관공서’

2015년 5월 완공된 새 청사 ‘도시마 에코뮤지타운’은 일본 최초이면서 지금까지 하나뿐인 ‘아파트 일체형 관공서’다. 1~10층까지는 구청 공간이고, 11~49층은 432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다. 이 중 110세대는 초등학교 인근 주택가 주민들에게 분양했고, 322세대는 일반 분양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새 청사 효과 덕에 인구가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살아났다. 2010년 270억엔(약 3,000억원)이었던 구 세수가 2017년 322억엔(약 3,500억원)으로 20% 가량 늘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구마 겐고 도쿄대 교수가 ‘나무’를 주제로 설계한 새 청사는 해외 관광객까지 끌어들이는 랜드마크가 됐다. 마코토 계장은 “아파트와 구청의 출입구가 분리돼 있고 야외 정원이 잘 조성돼 있어 아파트 주민을 비롯한 구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며 “아파트와 관공서가 융합되면서 주거 면적과 공용 공간을 더 많이 확보했다”고 말했다.

내년 완공 예정인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오류1동 주민센터 조감도. 구로구청 제공
내년 완공 예정인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오류1동 주민센터 조감도. 구로구청 제공

◇한국도 ‘구청+공공주택 복합건물’ 시도

서울 서초구청과 구로구 오류1동 주민센터 등도 낡은 청사를 다양한 용도로 개발하는 복합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내년 하반기 완공 예정인 오류1동 주민센터는 지하 1~4층은 주차장, 지상 1층은 근린생활시설, 지상 2~5층은 주민센터, 지상 6~18층은 저소득 청년층을 위한 행복주택으로 설계됐다. 구로구는 예산 투입 없이 주민센터를 짓게 됐고, 위탁개발을 맡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토지 매입 부담 없이 공공 임대주택 180채를 공급하게 된다. 서초구도 2026년 준공을 목표로 청사와 상업시설, 임대주택 등이 동거하는 청사 개발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마구 성공 사례의 핵심이었던 민간 참여는 제한적이다. 정부가 틀어 쥐고 있는 규제 때문이다. 이정형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민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규모를 키우고 상업시설을 유치하는 등 큰 틀에서 지역 활성화를 꾀해야 도시재생이 도시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며 “난개발과 공공시설 상업화 등 민간 주도 개발을 둘러싼 우려에 대해서는 정부가 계약 단계에서 철저하게 조사ㆍ예방하면 된다”고 말했다.

노후화한 도심이었던 일본 도쿄 남쪽 미나토구에 2014년 247m짜리 초고층 빌딩 ‘도라노몬힐스’가 생기면서 일대는 활력을 되찾았다. 모리빌딩 제공
노후화한 도심이었던 일본 도쿄 남쪽 미나토구에 2014년 247m짜리 초고층 빌딩 ‘도라노몬힐스’가 생기면서 일대는 활력을 되찾았다. 모리빌딩 제공

◇지하도로와 초고층 빌딩이 만날 때… ‘도라노몬힐스’

도쿄 미나토구의 랜드마크인 247m짜리 초고층 빌딩 ‘도라노몬힐스’. 2층 야외 정원은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는 휴식 공간이다. 스페인 공공예술가 하우메 플렌자의 설치작품 ‘뿌리’가 놓인 잔디밭 위에선 콘서트와 요가 수업, 미술 대회 등이 수시로 열린다. 건물 밑에선 순환도로인 환상 제2호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2020 도쿄올림픽 선수촌으로 연결되는 지하도로다.

낡은 중소기업 건물이 몰려 있었던 이 지역의 풍경은 5년 전 도라노몬힐스가 들어서면서 180도 달라졌다. 1년 만에 유동 인구가 7%이상 증가했고, 지역 부동산 가격도 34.4% 상승하는 등 활기를 찾았다. 내년 초까지 초고층 빌딩 세 동이 반경 1㎞ 지역에 연달아 들어서고 나면 일대는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로 도약하게 된다.

도라노몬힐스는 고밀도 도심 재생의 모범 사례다. 인구 밀도는 높은데 부지는 좁고, 도로까지 확충해야 하는 3중고를 지하 도로와 초고층 빌딩의 결합으로 해결했다. 도라노몬힐스 부지는 길이 9㎞, 폭 100m인 도로가 개발되기로 결정된 곳이었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정체된 상태였다. 1989년 ‘입체도로법’이 만들어지면서 민간 부동산개발업체인 모리빌딩이 나섰다. 모리빌딩은 도로가 건물 밑으로 지나가게 하고 지상에는 초고층 빌딩을 올리자는 복안을 냈다. 입체도로법의 골자는 도로 주변 공간 사용 제한을 풀어 도로 상ㆍ하부에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법 덕분에 도쿄도가 관리하는 지하도로와 모리빌딩이 소유한 도라노몬힐스가 전략적 동거를 할 수 있게 됐다.

2011년 착공한 도라노몬힐스 사업비 2,300억엔(약 2조5,000억원)은 모리빌딩에서 전액 투자했다. 민승현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20일 “전폭적인 정부 지원과 민간업체의 적극적 참여가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라고 말했다.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도라노몬힐스’ 아래에는 환상 제2호선과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 있다. 강지원 기자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도라노몬힐스’ 아래에는 환상 제2호선과 연결되는 도로가 뚫려 있다. 강지원 기자

◇전문가들 “한국 입체도로법 마련 등 법 정비해야”

한국에서도 도로 주변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복합 개발이 진행 중이다. 도심 공공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서울 중랑구 북부간선도로 위에 인공대지를 조성하고 공공주택 1,000가구와 공원, 문화체육시설 등을 짓기로 한 것이 대표 사례다.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에서도 도로 위 유휴부지가 다양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단, 정부 주도의 도시 재생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행 도로법상 도로는 정부계획시설로 분류돼 민간기업의 개발 참여가 제한돼 있다. 일본의 입체도로법 취지를 수용한 ‘도로공간의 입체개발에 관한 법률안’이 올해 초 국회에 제출됐지만, 별다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정형 교수는 “정부의 재정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도로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도쿄=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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