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시집인 ‘시경(詩經)’에 석서(碩鼠)라는 시가 있다. 모두 3절로 되어있는데 1절은 다음과 같다.
“큰 쥐야 큰 쥐야 나의 기장을 먹지 마라. 3년이나 너한테 질렸거늘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으니 너를 버리고 저 ‘락토(樂土)’로 가리라. 락토! 락토! 내 살 곳 얻으리.(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
여기서 큰 쥐는 백성의 고혈을 빨아대는 위정자를 말한다. 2절과 3절도 마찬가지로 임금을 버리고 ‘락국(樂國)’과 ‘락교(樂郊)’로 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춘추시대 즈음 혹은 그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시는 중국 민초들이 살아생전에 ‘락토’와 ‘락국’을 가고자하는 갈망을 보여준다. 훗날 불교가 들어오면서 ‘락토’는 ‘극락정토’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어 더욱 널리 퍼져 나간다.
임금의 폭정을 피해서, 평화로운 ‘락토’를 찾아간다는 생각은 면면히 이어진 듯하다. 이런 의식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라 하겠다. 짧지만 인상적인 내용으로 현세에서 이상향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진(晉)나라 태원(376~396) 연간에 무릉(武陵)에 사는 어부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도화 꽃이 만발한 별천지를 찾게 된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이주해왔다고 말한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해는 BC 221년이다. 그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로 500년 넘게 살아왔다는 말이 된다. 어부의 눈에 비친 그곳은 극락이었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이 사실을 알리고 다시 그곳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현실을 버무린 몽환적인 이야기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실재하는 이상향을 뜻한다. 우리 동요에 ‘나의 살던 고향은’ 또한 복숭아꽃이 등장하며 시작한다. 자신의 고향을 이상화 하는 기제로 복숭아꽃이 등장한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무릉도원이었다. 그러나 무릉도원은 존재하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요도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로 맺는다. 결국 이제는 갈 수 없다는 서글픔이 느껴진다. ‘도화원기’는 민초들의 희망과 아쉬움을 함께 담고 있다.
조선의 경우에는 불교가 민중들의 삶에 뿌리를 내려서인지 또는 갑갑한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예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경향의 작품이 있다. 현재 한국인도 그런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다시 태어나면…’을 화제로 삼기 좋아하고, 관련한 설문조사 등도 많다. 예컨대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냐’, 혹은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랑 살겠는가’ 등이 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사례다.
이런 우리네 심성을 잘 대변한 작품이 ‘삼사횡입황천기(三士橫入黃泉記)’이다. 조선후기 작자 미상의 한글소설이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세 명의 선비가 졸지에 저승에 들어간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판본은 여럿이지만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과거 준비 하던 선비 세 사람이 백악산에 올라 유람하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다. 마침 저승에서 온 차사가 실수로 세 사람을 잡아간다. 염라대왕이 사실을 알고 세 선비를 다시 인간 세상에 보내주도록 한다. 세 사람이 억울하다며 자기들 소원대로 환생하게 해달라고 하자 염라대왕이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며 원하는 바를 써내게 한다.
첫째 선비는 용맹한 영웅으로 살기를 바란다. 문무를 겸비하고 병법에 통달하여 대장군이 되어 위엄이 천지에 진동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란다. 둘째 선비는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옥골선풍의 선비로 문명(文名)을 떨치고, 암행어사와 팔도순무사로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준 뒤, 백관을 다스리다 은퇴하고 싶다고 한다. 염라대왕은 두 사람의 소원대로 처리해 준다.
셋째 선비는 좋은 가문에 태어나 바르게 자라 부모에 효도하고 경치 좋은 곳에 초당을 짓고 세상영욕을 물리치고 자연을 즐기며 한가하게 살기를 바란다. 슬하에는 2남 1녀를 두고 부부화목하고 자손이 잘되며, 병 없이 장수하다가 편히 죽기를 바란다.
이 말을 듣고 염라대왕이 대로하여 꾸짖으며 말한다. ‘욕심 많고 흉악한 놈아. 성현군자도 하지 못할 일을 모두 다 달라 하니 그 노릇을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이 자리를 내놓고 내가 스스로 하겠다.’
인생의 비원(悲願)을 해학으로 마무리 짓는 예술적 기법이 뛰어나다. 사실 앞에 두 선비가 말한 희망은 현실적이지만 이루기 힘들고, 마지막 선비의 희망은 소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루기 힘들다.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런 행복한 삶을 정녕 이룬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하여 염라대왕이 성을 낸 이유가 오히려 더 공감된다. 작품의 의도에 절로 장단을 맞추는 것을 보면 필자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판소리에 송서(誦書)라는 장르가 있다. 묵계월 명창이 ‘삼설기(三說記)’란 제목으로 ‘삼사횡입황천기’의 창법을 전승했는데 이제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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