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는 매독균을 처음 발견한 공과 생체실험의 과를 함께 기억해야 할 과학자다.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1.9~1928.5.21)는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서 활동한 세균 학자로, 1913년 매독 병원체인 스피로헤타균 트레포네마 팔리둠(Treponema pallidum)을 처음 발견했다. 이후 그는 록펠러의학연구소 세균ㆍ미생물 파트의 스타 학자로서, 매독 외에 뱀독 혈청 및 황열병과 오로야열(Oroya Fever) 등 감염성 열병의 병원체 연구에 힘썼고, 1920년대 록펠러재단의 지원으로 중남미 여러 지역서 질병을 연구하다 황열병에 감염돼 만 52세로 숨졌다.

히데요의 매독균 연구는 꽤 방대한 인체 실험에 기반했다. 그는 1911~12년 록펠러연구소에서 ‘투베르쿨린 검사(결핵 감염 피부검사)’와 유사한 방식으로 매독균 항원으로 만든 약을 주사해 피부 반응을 살펴 감염 여부를 검사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대상자는 총 571명. 그 중 315명이 매독 환자였고, 나머지는 말라리아, 나병, 결핵 등 매독과 무관한 병을 앓던 환자들이었다. 그중에는 만 2~18세의 미성년 고아도 다수 포함됐다. 생체 해부실험 반대운동 진영에서 히데요의 실험 윤리를 문제 삼으면서 그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다.

록펠러 연구소와 재단은 히데요를 적극 방어했다. 재단 측은 히데요와 그의 병원 동료들이 항원 테스트 시약을 자신들에게 먼저 투여해 안전성을 검증했다는 점을 앞세워 주장했다. 얼마 뒤 히데요는 제 몸에는 시약을 주사하지 않은 사실이 들통났지만, 1912년 5월 뉴욕 검찰은 아동학대방지협회 등의 히데요에 대한 고발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기각했다.

그는 후쿠시마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나 현 일본의대(재생학사)를 거쳐 의사 자격증을 땄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대와 록펠러연구소에서 일한 시먼 플렉스너 박사의 연구팀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만 2세도 되기 전 난로 화상으로 왼손을 거의 잃다시피 했지만, 그의 영특함을 귀하게 여긴 초등학교 스승 등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왼손 기능의 70% 재활에 성공했다. 그 경험으로 의사가 되고자 했고, 그 장애 탓에 의사가 못 돼 의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는 그의 삶과 업적을 기리는 수많은 동상과 기념관이 있고, 2004년부터는 1,000엔권 지폐의 새 모델이 됐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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