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수사 당시 스리랑카인 피의자 A씨에게 경찰이 반복적으로 “거짓말 말라”며 추궁한 건 진술거부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20일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공익인권변호센터가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자 내놓은 판단이다.
저유소 화재사건은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 덕양구 대한송유공사 저유소에서 화재가 발생, 280만ℓ의 기름을 불태워 117억원대 손실을 발생시킨 대형 화재사건이다. 경찰은 화재 원인을 조사한 뒤 A씨가 날린 풍등이 원인이었다 보고 중실화 혐의를 적용, A씨와 한국인 책임자 등 5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공익인권변호센터는 이 사건 수사 당시 경찰이 A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거짓말 하는 것 아니냐”며 진술을 강요했고, 기자들에게 A씨의 이름과 국적 등을 알려줘 A씨 사생활을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진정인 측 손을 들어줬다. 인권위는 A씨에 대한 경찰 조사 과정을 담은 영상녹화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찰이 A씨에게 123회에 걸쳐 ‘거짓말’이라 말하며 압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가 모순점을 지적하는 질문에 답을 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다가, ‘거짓말이냐’는 질문에 답을 하면 또 “거짓말 말라”는 식으로 추궁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경찰의 ‘거짓말’ 발언은 A씨에게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현행 법 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 과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또 경찰이 A씨 인적 사항을 공개한 것도 문제라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 사건이 그 당시 국민적 관심사였기에 어느 정도 피의사실 공표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A씨 이름, 국적, 나이, 비자 종류까지 세세히 공개한 건 적절치 않다고 봤다. 국민적 궁금증이 컸다 해도 경찰이 적당한 수준에서 끊었어야 했다는 얘기다. 인권위는 “A씨 신상 공개를 통해 사건과 무관한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악화시키고 되레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고양경찰서장과 경기경찰청장에게 해당 경찰관에 대해 주의조치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소속 직원들에게 피의자 관련 직무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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