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11일 대구 문화예술회관앞에서 열린 대규모 '문 스톱' 규탄집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대구=뉴스1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요새 문빠, ‘달창’ 이런 사람들한테 (KBS 기자가) 공격당하는 거 아시죠.” 지난 11일 대구 장외집회에서 이렇게 내뱉었던 나 원내대표는 발언 반나절도 안 돼 사과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를 지칭하는 과정에서 그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특정 단어를 쓴 바 있습니다. 인터넷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후로도 며칠간 여성혐오, ‘일베’ 비속어 사용 후과를 치러야 했다.

미안함은 다른 게 아니다. 나 원내대표가 일베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데 언론도 일조한 것 아니냐는 자책 때문이다. 사실 그의 발언 하루 전 전여옥 전 의원의 페이스북 게시물을 기사화한 적이 있다. 전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KBS 대담 이후 “오늘 문빠 달창들이 제일 뿜었던 것은 ‘좌파독재’라는 대목이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후배 기자는 10일 이 발언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는데, 데스킹 과정에서 나 역시 ‘무심코’ 지나갔다. 달창이란 표현에 담긴 혐오, 비하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셈이다. ‘만약 전 전 의원의 글을 강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면 혹시 다음날 나 원내대표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가정도 해봤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는 일베의 폐해가 하루 이틀 된 일은 아니다. 7, 8년 전만 해도 사회부 경찰팀 기자들은 자주 일베 인터넷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들이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나 게시판을 훑고 기사화하는 식이었다. 2012년 대선 이후엔 일베에 집중한 저작과 연구물도 쏟아졌다. 그만큼 일베가 사회의 우경화 현상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온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 김학준의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 등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부쩍 힘을 받은 일베 사용자들의 주요 공격 대상은 호남, 여성, 진보좌파였다. 전라도는 ‘7시 방향’에 위치한 ‘홍어’들의 나라이고,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지역주의와 북한 선동에 따른 ‘폭동’으로 격하시켰다. 여성들은 ‘개념 없는 김치녀’로 비하됐다. ‘여자는 3일에 한 번 패야 한다’는 ‘삼일한’을 유통시킨 곳도 일베였다. 특히 일베 사이트는 수십 년 쌓아온 자랑스러운 역사인 ‘민주화’를 저급함의 상징으로 비틀었다.

안타깝게도, 여러 연구와 문제 제기가 나오고 수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오히려 일베의 생각과 표현은 일상화했다. 주류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폭동인 5ㆍ18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는 망언을 한 의원을 그대로 내버려둔 정당이 지지율 1위를 다툰다. 성소수자 인권도 함께 챙기겠다는 말 대신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공개 발언이 유력 정치인 입에서 당당히 나온다. ‘동성애는 극혐이고, 세상에는 남성과 2류 여성만 있다’는 일베식 사고와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다.

나 원내대표는 17일 “(일베에서 달창이) 비속어로 사용된다고 해서 즉각 사과했는데 지난주 내내 방송, 신문사설, 포털, 민주당 규탄대회에서 극우 막말 프레임을 썼다”고 비판했다.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일은 바로잡자는 얘기가 그리 억울한가.

유럽 각국 극우정당 창궐의 동력은 혐오정치였다. 무슬림, 이민자, 소수자를 가리지 않았다. 한국의 보수도 호남ㆍ여성혐오에 기생하는 일베와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 삼색 깃발부대’에 의존해선 미래가 없다. 나 원내대표부터 상식과 합리에 기초한 보수로 되돌아가야 한다. 일베라는 괴물이 일상 속에 스며들고, 권력이 되려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지 않나. “정치는 절대로 게임이 아니며,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인간적인 노력이다.” (파커 J 파머,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정상원 디지털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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