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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39년 전 그 때처럼…광주시민은 역시 성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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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39년 전 그 때처럼…광주시민은 역시 성숙했다

입력
2019.05.19 16:28
수정
2019.05.19 19: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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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 정치권은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 일주일 전부터 소란스러웠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기념식 참석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고, ‘사이코패스ㆍ한센병’ 등 막말 논란까지 불거졌다. 보수성향 단체들은 5ㆍ18 폄훼 집회를 예고하는 등 긴장감은 갈수록 높아졌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국회의원은 “이번 기념식은 조용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직접 찾은 광주의 분위기는 달랐다. 진보ㆍ보수진영 간 핏대 높여 싸우던 긴장감보다 ‘용서’와 ‘배려’가 광주를 메웠다. 황 대표를 향해 물줄기와 플라스틱 의자가 날아오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두 번 정도에 불과했다. 우려와 달리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염원했다는 이유로 가족을 보내야만 했던 광주시민들은 한과 분노를 절제하며 황 대표를 맞았다.

오히려 광주시민이 같은 광주시민의 아픔을 보듬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당 의원들에게 고성과 야유, 욕설을 보낸 이들도 있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며 말리는 시민들이 상당수였다. “이러시면 행사가 이상해진다”, “아이들도 보고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들이 시위대의 거친 행동을 막았다. 울다가 지쳐 길바닥에 주저 앉은 유족들을 달래며 부축하는 시민들도 보였다. 황 대표가 입장할 때, 오히려 일반 시민들이 입장하는 반대편 보안검색대는 평온했다.

황 대표가 퇴장할 때 청년들이 격한 몸싸움을 벌이자, 시민들은 “학생들 이러면 안 돼”라며 말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들이 학생 한두 명을 끄집어 내 에워싸려고 하자 “연행은 안 된다”는 구호가 터져 나왔고, 이를 들은 경찰과 청년들 모두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자제하기도 했다.

5ㆍ18을 대하는 광주시민들의 성숙함은 기념식 이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옛 전남도청이 있는 금남로에선 보수성향 단체들이 ‘5ㆍ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집회를 벌였다. 보수단체들은 “가짜 유공자 걸러내자”고 외치며 시민들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식을 나누고 준비한 행사를 진행하며 의연하게 대처했다. 행사를 지켜본 정치인들 대부분 “예상과 달리 큰 충돌없이 잘 치러진 것 같다”고 전했다.

올해 기념식은 ‘오월 광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란 주제로 ‘정의와 통합’의 메시지가 강조됐다. 광주시민들은 분노와 슬픔 속에서도 희망과 통합의 길을 보여줬다. 39년 전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일궈낸 것처럼 39년이 지난 2019년에도 숭고한 희생정신이 살아있었다.

광주=류호 정치부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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