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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입력
2019.05.2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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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청렴하고 강직하기로 소문난 모 대법관님이 퇴임 후 편의점을 운영하다 1년만에 청산하고 대형 로펌으로 가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만큼 중요하다. 예전에는 버스나 기차를 탈 때 서로 먼저 자리를 잡으려고 창문으로 가방을 던지거나 버스출입구로 몰려들었다. 담배꽁초나 껌을 길거리에 함부로 버렸고, 무단횡단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은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다. 질서를 잘 지키고, 정말 친절해졌다. 거리는 쓰레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 잘 살게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 청렴하고 도적적으로 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은 분명 진실이다. 실제로 누구에게나 돈보다 중요한 것이 항상 몇 개 이상 있다. ‘마음의 평온’을 돈 주고 살 수 있을까? ‘건강’, ‘사랑’, ‘두근거리고 가슴 뛰는 삶’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위 말 뜻을 “돈이 많으면 불행하다”라고 해석한다.

아사디 지로의 소설 ‘천국까지 100마일’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심장병으로 죽어가는 어머니가 가난한 모습으로 찾아 온 막내 아들에게 말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치스러운 사람이야. 뼈저리게 가난을 겪어 본 사람은 행복 같은 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는 걸 알아.” 죽음을 앞 둔 저 어머니의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어”라는 말이 상당히 불편하고 거북스럽게 다가오면서도, 그 말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지만, 적당한 돈이 있으면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이 주는 교훈이다.

적당한 돈은 인간다운 존엄함을 지키게 해주고,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돈 문제야 말로 자긍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심리적으로도 독립할 수 없다. 누군가의 경제력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떳떳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행복한 인생을 영위하는데, 많은 돈은 필요 없다. 자기 형편에 맞는 ‘적당한 돈’이면 된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유를 위한 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시 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소유하라.” 자기 노력과 땀이 들어간 돈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돈에는 자부심과 가치가 있다.

돈을 ‘경멸’하는 사람이나 돈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돈이 오지 않는다. 돈은 최상의 종이고, 최악의 주인이다. 돈이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이 될 때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불행해 진다. 적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가 주인이 되어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 따라서 돈에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돈이 가진 여러 단면 중에서 돈의 쓴 맛이라는 무거운 잣대 하나만을 들이댄 것이다. 돈이 사랑을 가져다 주지 않겠지만,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나누어줄 수 있다. 돈이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견딜 수 없는 악취가 나고,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된다. 올바른 돈이 이웃을 위해 하는 일을 지켜 본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윤경 더리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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