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 제빵사가 17일 오후 서울 이태원동 ‘오월의 종’ 2호점에서 크루아상을 팬에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제조법은 같지만 매일의 온도와 습도, 체온, 반죽 온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작은 빵집 ‘오월의 종’은 ‘빵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매일 오전 11시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로 북적댄다. 무화과 호밀빵, 크랜베리 바게트 등 대표 빵은 한두 시간 만에 품절된다. 이태원 1, 2호점과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등 세 곳에서 하루에 판매되는 빵이 1,000여개. 동네 빵집치고 엄청난 양이다. ‘오월의 종’의 대표는 공대를 나온 시멘트 회사 영업사원에서 제빵사로 늦깎이 변신한 정웅(51)씨. 산문집 ‘매일의 빵’을 낸 그를 최근 이태원 2호점에서 만났다.

정 대표가 빵에 빠진 건 ‘우연’이었다. 입사 6년만인 2001년 “내 의지로 이끌어 가는 진정한 삶을 살고 싶어서” 시멘트 회사를 그만 뒀다. 사표를 낸 날,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있는 작은 빵집이 그의 눈에 들었다. 무작정 제빵 학원에 등록했다. “빵을 만들겠다고 계획한 적도 없고, 빵을 제 돈 주고 사먹어 본 적도 없어요. 뭐라도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빵을 정 대표는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노력도 했다. 매일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빵을 만들었다.

정웅 제빵사가 17일 서울 이태원동 ‘오월의 종’ 2호점에서 다음날 판매할 빵의 반죽을 확인하고 있다. 물과 밀가루, 효모를 넣어 반죽한 ‘효모종’이다. 강지원 기자

3년만인 2004년 경기 고양시에 첫 빵집을 열었다. 요즘 만드는 것과 똑 같은 빵을 팔았지만, 하루에 한 개도 팔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빵이 딱딱하고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 류의 혹평을 들었다. 시큼한 효모 냄새를 놓고 “상한 빵 같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빵집은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정 대표는 빚을 떠안고도 포기하지 않았다. “망하고도 빵 만드는 일이 좋더라고요. ‘내가 정말 빵을 좋아하는구나’ 깨달았죠.”

두 번째 기회도 우연히 찾아왔다. 빵집 손님 중 한 명이 “이태원이라면 잘 될 것 같다”며 정 대표의 등을 떠밀었다. 마지못해 찾은 이태원에서 빵을 좋아한다는 부동산중개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정 대표에게 대출까지 해 주면서 빵집을 다시 해 보라고 권했다. 정 대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2008년 2월 ‘오월의 종’ 1호점을 열었다.

세상은 여전히 그의 빵을 알아 주지 않았다. 매상은 바닥이었고, 제빵대회 심사위원들에게 “기본이 안된 빵”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정 대표는 만들고 싶은 빵을 계속 만들었다. 행복해서였다. 3년을 그렇게 버텼다. “안 팔리는 빵이 너무 아까워서 주위 술집에 나눠줬어요. ‘의외로 괜찮다’는 반응이 아주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1년 어느 날 처음으로 빵이 다 팔렸죠. 이후로 가속이 붙기 시작하더니 품절 행진이었고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도움도 컸어요.”

‘오월의 종’에서 판매하는 무화과호밀빵.
‘오월의 종’의 대표 메뉴인 ‘무화과호밀빵’. 호밀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무화과는 터키산보다 가격이 높은 미국산을 쓴다.

‘오월의 종’의 손님은 절반 이상이 중장년 남성이다.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중장년 남성이 많아진 데다, 질리지 않는 맛 덕분인 것 같아요.” 정 대표는 재료를 아낌 없이 쓴다. 무화과 호밀빵은 성인 팔뚝 만한 크기에 무화과를 가득 넣고도 2,500원이다. 그는 가게를 확장하거나 빵 생산량을 늘릴 생각이 조금도 없단다. “제가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고 싶어요. 지금 생산하는 게 최대치에요. 빵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 건 맞지만, ‘많이’ 벌기 위해 빵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명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싫어요. ‘먹을만한 빵 만드는 제빵사’로 기억해 주시면 충분해요.”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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