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가 떠나가는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한 탈출구 모색에 나섰다.
케이블 채널의 선전이 지상파에게 ‘시청자 이탈’과 ‘시청률 하락’이라는 위기를 전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그간 지상파들은 부진을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이미 반응이 검증된 포맷의 드라마나 예능을 도입해 후발주자로 나서는 등의 소극적인 콘텐츠적 대안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지상파의 위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됐다. 최근에는 시청자들의 생활 패턴 변화에 따른OTT 플랫폼의 폭발적인 시장 점유율 증가까지 더해지며 지상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이 같은 상황 속에 지상파가 드디어 ‘대대적인 편성 변경’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떠나간 시청자들을 붙잡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유례없이 파격적인 시도다.
3사 가운데 먼저 변화를 알린 것은 MBC와 SBS다. MBC는 앞서 지난 달 월화극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전해지며 약 40년 만의 ‘MBC 월화드라마 시대’ 종료에 여부를 두고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당시 MBC 측은 “중대한 사안인 만큼 내부적인 확인 이후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MBC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고 “그간 평일 밤 10시에 방송되던 월화, 수목 미니시리즈를 오후 9시로 이동해 방송한다”고 밝혔다. 1980년대 ‘평일 밤 10시 미니시리즈’라는 공식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MBC가 ‘밤 9시 드라마 시대’의 시작을 알린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22일 방송되는 미니시리즈 ‘봄밤’이 수목 오후 9시에, 6월 방송 예정인 월화극 ‘검법남녀2’가 월화 오후 9시에 방송된다. 다만 오는 9월부터 MBC는 월화극을 전면 폐지, 해당 시간대를 예능으로 채울 예정이다.
MBC 측은 파격적인 편성 이동의 이유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과 변화하는 시청자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선제적 전략”이라며 “밤 10시 시간대 채널에 관계없이 같은 장르가 편성됨에 따라 치킨게임 양상으로 변해가는 드라마 시장의 정상화와 시청자 선택권 확대를 위한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SBS는 올 여름 시즌 한시적으로 월화극을 폐지하는 새로운 편성 전략을 도입한다.
지난 10일 SBS 측은 “이번 여름 시즌 월화 밤 10시 시간대에 드라마 대신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전략은 다르지만, ‘주중 밤 10시대=드라마 시간대’라는 지상파의 고전적인 편성 틀을 깨겠다는 의도는 MBC와 같다.
SBS의 이번 결정은 앞서 예능 장르가 주로 편성돼 왔던 금토 밤 10시대에 편성됐던 ‘열혈사제’가 흥행에 성공함에 따른 조치다. SBS 측은 “미국에서도 여름 시즌엔 새로운 드라마를 론칭하기 보다 다양한 장르를 편성하는 추세”라며 “월화에 새로운 편성을 시도해 다양한 시청자들의 니즈를 알아본 이후, 다시 경쟁력 있는 월화극으로 시청자들을 찾을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 같은 편성 전략은 지난 6일 첫 방송을 시작한 월화극 ‘초면에 사랑합니다’가 종영한 뒤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앞서 이서진과 이승기가 SBS가 제작 계획 중인 16부작 신규 월화예능 출연을 조율 중이라는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던 바, SBS가 편성 전략 변주 성공을 위해 어떤 카드를 내놓을 지 방송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대대적인 편성 변화를 공식화 한 MBC, SBS와 달리 아직까지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KBS 역시 지난 1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전해 향후 행보에 기대감을 모았다.
양승동 KBS 사장은 “편성에 있어 계속 변화가 있어야 하고 창조적 파괴 역시 해야 한다”며 MBC, SBS의 편성 이동에 대한 공감을 표했다. 이어 양 사장은 “KBS 역시 나름대로 편성의 변화를 줄 것이고, 타사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타 방송사들의 시도가 방송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길 기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케이블이나 OTT 플랫폼에 비해 적은 제작비, 채널의 특수성에 따른 규제의 한계, 타 채널로의 인력 유출 등으로 인한 문제 등에 도무지 빛이 보이지 않았던 지상파들이 제대로 승부수를 던졌다. 오랜 전통을 깨고 파격을 시도한 지상파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고 위기를 탈출할 수 있을 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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