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홍혜민의 B:TV] ‘이몽’과 약산 김원봉,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홍혜민의 B:TV] ‘이몽’과 약산 김원봉,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입력
2019.05.17 09:27
0 0
‘이몽’이 아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MBC 제공
‘이몽’이 아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MBC 제공

적지 않은 이들의 우려와 비판 속 칼을 뽑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텐데, 무는커녕 허공만 가르고 있는 모양새니 답답하다.

소신이 빈약 했던 탓일까, 소신은 있지만 세간의 비난 여론을 너무 의식했던 탓일까. 분명한 건 “우리 국민이 꼭 알아야 할 인물이었기에 논란에도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던 제작진의 자신감 넘치던 설명이 무색하게도 현재 MBC ‘이몽’은 약산 김원봉이라는 인물을 전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몽’ 속 김원봉은 매력적이지도, 그렇다고 기존의 논란을 불식시킬 만큼 설득력 있지도 않다. 그저 극 중 강렬한 액션만이 지금 그가 보여주는 전부다.

‘이몽’에서 유지태가 맡은 김원봉 역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실존인물이다. 하지만 김원봉이 ‘이몽’의 중심인물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뒤 여론은 분분했다. 김원봉이 항일독립투사였지만 이후 월북, 1952년 3월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수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본부위원장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원봉의 드라마 등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매체에서 독립투사로서의 김원봉의 업적을 영웅시 했을 때, 그의 월북 이후의 행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이들은 김원봉이 월북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친일경찰의 고문 때문이었으며, 김원봉은 월북 이후에도 공산주의자로 활동하지 않았다고 반박하며 이에 맞섰다.

유지태는 극 중 약산 김원봉 역을 맡았다. MBC 제공
유지태는 극 중 약산 김원봉 역을 맡았다. MBC 제공

이 같은 여론의 대립과 맞물려 앞서 영화 ‘밀정’과 ‘암살’ 등에서 김원봉을 모티브로 삼은 인물들이 등장한 바 있었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처음이라는 점, 현재 정치권에서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논쟁이 뜨거운 상황이라는 점이 더해지며 ‘이몽’을 향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실제로 한국당은 지난 달 17일 논평을 통해 ‘이몽’의 방송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격앙된 상황 속에서 ‘이몽’의 윤상호 감독은 지난 2일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고, 곤란한 지점이 생길지라도 인물에 대해 곱씹어보고 독립운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한다”는 뜻을 밝히며 강경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현재 ‘이몽’이 김원봉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럴 거면 온 몸으로 비난을 맞으면서까지 그를 중심 인물로 고집했던 이유가 대체 뭘까’라는 질문이 절로 따라 붙는다.

가장 큰 문제는 ‘소신껏’ 김원봉을 택했고, 주인공의 이름을 본명으로 설정하는 위험부담까지 감수한 제작진이 정작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에 있어서는 팩트가 아닌 픽션에 의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차게 선택했고, 200억이라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사전제작까지 했다면 차라리 ‘이몽’을 통해 픽션보다는 역사적 팩트에 기반한 김원봉의 이야기를 전달하며 의열단장이자 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조명하며 승부를 보는 것이 조금 더 설득력 있는 행보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몽’은 김원봉의 내밀한 감정을 다루거나 입체적인 서사를 쌓는 대신 ‘불타는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의열단장’이라는 표면만 그리며 그를 딱히 공감과 몰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밋밋한 캐릭터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렇다 보니 극 중 김원봉을 연기하고 있는 유지태도 안타까운 상황이 됐다. 자신의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지만, 그리 쉽지 않아 보여서다.

시도와 의미는 좋았지만, 드라마라는 장르의 특성과 여론을 감안했을 때 김원봉의 실제 행보를 바탕으로 극을 구성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면 차라리 ‘김원봉’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실제로 ‘이몽’에서 실존인물에 기반했던 박에스더의 이야기를 비롯해 김립 피살사건 등은 실제 역사를 조명해 현실감 넘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여기에 오는 18일 방송되는 이태준 열사의 이야기 역시 극 중 가장 사실적인 이야기를 예고한 상황이다. 주인공이자 어쩌면 가장 역사적 팩트에 기반했어야 할 김원봉이 아닌 다른 독립 열사들의 이야기가 더욱 울림을 전한다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몽’과 김원봉을 향한 불편한 시선을 표했던 시청자들은 여전히 쓴 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기대감을 표했던 시청자들까지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이는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아직 방송 초반인 덕분에 상황을 타개할 기회는 남아있다지만, 사전제작의 특수성 때문에 그마저도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몽’이 약산 김원봉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 때 일각에서 기대감을 표했던 이유는 김원봉이 독립 운동 이후의 행보 때문에 논란이 있을지언정 향후 다양한 작품을 통해 그려낼 잠재적 요소가 충분한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처음으로 김원봉을 전면에 내세운 ‘이몽’이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잠재우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성공적인 스타트 라인을 끊었을 때의 황금빛 미래였다. 과연 ‘이몽’이 김원봉의 새 미래를 향한 열쇠가 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행보에 대한 대답은 ‘글쎄’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