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여자축구에 100억 지원 처우 개선…유통 기업과 축구의 만남
작년 4월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출전)에 가입한 지소연과 이를 축하해주는 동료들. 대한축구협회 제공

‘우리 (지)소연이 누나도 이제 비즈니즈 타는 거죠?’

신세계그룹이 대한축구협회와 후원 계약을 해 2024년까지 여자축구 발전에 100억여원을 지원한다는 소식이 지난 15일 알려지자 한 팬이 남긴 글이다. 지소연(28)은 영국 여자 프리미어리그 첼시 레이디스에서 뛰는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 공격수다.

해외에서 뛰는 축구 선수가 국가대표에 소집되면 대한축구협회가 항공권을 제공한다. 그런데 축구협회 내규상 남자 성인대표만 비즈니스석, 여자 성인대표를 포함해 남자 올림픽대표(23세 이하)와 연령별 대표(19세 이하, 16세 이하 등)는 모두 이코노미석이 기준이다.

같은 영국에서 뛰더라도 A매치 출전을 위해 한국에 올 때 손흥민(27ㆍ토트넘)은 비즈니즈, 지소연은 이코노미석을 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종종 성 차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얼마 전부터 지소연과 조소현(31ㆍ웨스트햄)에게는 예외를 둬 비즈니즈석을 끊어주고 있는데 이는 여자 국가대표 중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둘 밖에 없어 가능한 일이다.

국가대표 선수단 전체가 해외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할 때는 예외를 적용하기 힘들다. 여전히 남자는 비즈니즈석, 여자는 이코노미석에 앉아 간다. 따지고 보면 항공권 말고도 한 끼 식단의 단가도 남자대표팀이 여자대표팀보다 비싸고 국가대표 훈련장인 파주 트레이닝센터 운동장을 배정할 때도 남자 대표가 우선이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남자대표가 여자대표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게 현실이다. 당연히 예산도 달리 배정한다. 성차별이 아닌 경제 논리로 봐 달라”고 말한다. 한정된 재원을 나눠 써야 하니 차등을 둘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남자월드컵 때는 선수들에게 비즈니스, 여자월드컵 때는 이코노미 항공권으로 차별을 뒀다가 다음 달 개막하는 프랑스 여자월드컵부터 여자 선수들에게도 비즈니즈석을 제공하기로 했다.

여자축구 대표팀이 6월 7일부터 한 달 간 프랑스에서 열릴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신세계 후원을 계기로 한국 여자축구 선수들의 처우도 개선될 거란 기대가 높다.

이정섭 축구협회 홍보마케팅 실장은 “항공기 좌석 등급 등 모든 면에서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에 비해 차별 받지 않도록 하거나 차별의 폭을 최대한 좁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보다 더 반가운 건 여자축구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정기적으로 열릴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남자대표팀은 1년에 십 수 차례 국내외에서 A매치를 치르는 반면 여자대표팀 A매치는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축구협회는 앞으로 여자대표 A매치를 매년 두 번 이상 정례적으로 개최할 방침이다. 선수들의 실전 경험이 늘어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후원 협약을 한 신세계와 대한축구협회 로고. 신세계,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번 협약은 축구와 유통 기업의 만남으로도 눈길을 끈다.

축구협회는 남자대표팀의 높은 인기 덕에 나이키, KEB하나은행, KT, 네이버, 교보생명, 현대자동차, 아시아나항공, 코카콜라, 롯데주류, 넥슨 등으로부터 연간 약 600억원의 후원금을 받고 있다. 유통 기업이 가세한 건 신세계가 처음이다. 이정섭 부장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유통 후원사에 대한 필요성이 있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양 측은 축구협회 마스코트인 백호 인형이나 머플러 등의 상품을 신세계 유통 채널을 통해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세계는 축구협회 후원을 통해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 파트너의 지위와 여자축구 메인 스폰서 자격을 동시에 획득했다. 또 앞으로 여자축구 A매치 경기 타이틀에는 ‘신세계’ 기업명이 들어간다.

인기 종목보다 비인기, 소외된 종목을 찾는 신세계의 스포츠 후원 철학도 새삼 주목 받는다.

신세계는 2012년부터 작년까지 컬링에 100억원 이상 후원했다. 7년 전만 해도 컬링은 일반인에게 생소했지만 꾸준한 지원 덕에 작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팀 킴’이라 불린 여자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며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스포츠로 성장했다. 김철민 신세계 홍보부장은 “신세계가 여성 친화적인 기업이다. 또 기존에 많이 알려진 종목보다 어렵지만 조금만 도와주면 꽃을 피울 수 있는 종목을 지원하자는 기본 방침에 따라 컬링과 여자축구를 후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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