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부터 통원치료 받아… 범행 3일 전 히로뽕 투약
15일 발생한 대구 인터불고호텔 방화사건은 조현병 환자가 히로뽕을 투약, 환각상태에서 휘발유를 호텔 휴게실에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자칫 초대형 참사가 벌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인터불고호텔 방화사건을 수사중인 대구 수성경찰서는 수년 전부터 정신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용의자 A(55)씨가 범행 3일 전 히로뽕을 투약한 뒤 사건 당일 다량의 휘발유를 구입, 호텔에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기름을 사라. 불을 질러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들려 범행을 하게 됐다고 진술했다. 조사결과 A씨는 올해만 7차례 정신병원을 찾아 진료받는 등 20년 전부터 수 차례에 걸쳐 과대망상 등 조현병 증상으로 통원치료를 받았다. 또 2년 전부터 꾸준히 병원을 다니며 치료약을 복용했다고 했으나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히로뽕까지 투약하는 바람에 심한 환청 환시 등 환각상태에 빠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가족들이 입원치료도 권유했으나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로뽕은 마약류관리법위반죄로 복역 중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우연히 만나 건네 받았다고 진술했다.
환각에 빠져 있던 A씨는 사건발생 전 15~20ℓ 들이 기름통 10여개를 구입했다. 이 중 14개를 사회 후배의 수입SUV차량에 싣고 대구 동구의 한 주유소에서 8통을 채웠다. 구입한 휘발유는 150ℓ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전에도 히로뽕 투약으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호텔로 직행한 A씨는 별관 1층 로비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있는 직원 휴게실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A씨가 15~20ℓ들이 휘발유통 6개를 부었다고 진술한 점에 비춰 뿌린 휘발유의 양은 총 100ℓ 내외로 추정된다. 또 SUV차량 뒷좌석에는 휘발유가 가득 찬 20ℓ들이 기름통 2개와 빈 통 6개가 남아 있었다.
범행 당일 호텔 폐쇄회로(CC)TV에는 A씨가 기름을 부은 뒤 라이터로 불을 지르다 손에 불이 붙자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당시 휴게실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방화 당시 이 호텔 별관에는 41명이 투숙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연기흡입에 따른 가벼운 상처만 입고 구조됐다.
경찰은 “호텔 직원이 연기가 새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119 신고와 동시에 소화기와 소화전으로 진화, 2층 이상으로는 연기만 올라갔을 뿐 불길은 번지지 않았다”며 “호텔 직원과 119의 신속한 대응으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치상과 마약류관리법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또 히로뽕을 건넸다는 A씨의 교도소 동기 소재에 대해서도 추적 중이다.
한편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48차례나 이 호텔에 투숙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방화와 특별한 연관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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