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사업 참여 김교성 중앙대 교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몽상이라거나, 불온하다거나, 미래에나 벌어질 일이라고 생각했던 ‘기본소득’이 어느새 우리 곁으로 쑥 다가왔다. 아동수당을 필두로 청년수당, 노인수당, 농민수당 등 특정 인구집단에 보편적으로 정부가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초등학생 전면 무상급식을 저지하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시장직을 중도 사퇴한 지 불과 8년 만의 변화다. 일각에선 과속 우려도 나온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 사업에 참여해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일원으로 기본소득ᆞ복지국가 등을 연구해온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를 만나 기본소득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정규직-부양자 중심 복지체계, 불평등 악화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줘 사회에 혁신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우한 기자
 -기본소득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낯선 제도다. 그런데 최근 비슷한 제도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해보자. 

“기본소득의 개념은 간단하다. 모든 사람에게, 근로조건이나 자산에 대한 조사 없이 무조건 현금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거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이런 개념에 딱 들어맞는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 지역에서 나오는 석유 등 천연자원 수입 중 일부로 기금을 만들어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미국 알래스카주가 유일하다. 1984년 연 331.29달러(약 35만원)로 출발해 2015년 연 2,072달러(약 230만원)을 지급했다.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적은 돈이지만, 기본소득의 효과로 알래스카주는 미국에서 가장 낮은 빈곤율과 가장 높은 경제적 평등을 유지하고 있다. 또 나미비아와 인도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해 긍정적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1973년 캐나다 마니토바주에서 대규모로 기본소득 실험을 했고, 2017년에는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와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시범사업을 하는 등 현재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다.”

 -기존 복지제도 대신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우선 사회가 너무 불평등해지고 기존 복지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복지체계는 ‘노동’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사회보험료를 내고 사회적 위험이 닥치면 그가 기여한 만큼 보호를 받는다. 정규직과 부양자 중심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노동 안정성이 약화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확대되면서 노동자 중심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일을 하든 하지 않든 누구나 복지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본소득이 주목받게 됐다. 두 번째는 기술 발전이다. 4차 산업혁명과 로봇,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점점 더 노동 없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로봇이 아무리 많은 상품을 생산해도 구매할 사람이 없다면, 그런 경제체제는 유지될 수 없다.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소비자의 필요성 측면에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미국 대선 출마자 앤드루 양 등이 유사한 주장을 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노동 없는 미래에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부를 공정하게 나누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공유재’(公有財) 개념의 확대다. 과거에도 ‘토지’ 같은 유한한 자원은 사적 소유권뿐 아니라, 공공재산이란 성격도 인정해야 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았다. 이후 전파나 정보 등도 공유재로 인정하는 등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우버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에 활용되는 데이터도 공유재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에 실질적으로 재화, 서비스,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용자들은 푼돈의 수수료만 받는 반면, 이들을 매개하는 플랫폼 사업자는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공유재가 창출하는 부를 공평하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도입을 주장하는 ‘국토보유세‘나 ‘공공택지 분양수익 환수’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부당하게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이 존엄과 재정적 자율성을 회복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일부 지자체가 농민수당을 농가 ‘가구주’에게 지급하려 하고 있다. 이는 기본소득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면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과 서울시 청년수당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청년배당)은 우리나라 지방정부에서 본격 시행되는 첫 기본소득제도다. 경기도에 3년 이상 계속 거주한 만 24세 청년 약 17만5,000명 모두에게 최대 연 100만원을 제공한다. 구직활동 증명, 자격심사 같은 조건도 없다. 하지만 지역경제 살리기의 일환으로 현금이 아니라 지역화폐로 지급한다. 청년배당은 기본소득의 여러 개념 중 ‘범주형 기본소득’이나 ‘부분 기본소득’이라 볼 수 있다. 노동가능 인구집단에 조건 없이 현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복지 역사에 남을 사건이며, 미래 기본소득 발전에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서울시의 청년수당은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전통적인 사회부조다. 지원대상이 19~34세 미취업자 중 졸업 후 2년이 넘은 사람으로 더 포괄적이지만, 중위소득의 150% 미만 가구 구성원으로 제한된다. 지급되는 금액은 매달 50만원씩 최장 6개월로 경기도보다 많지만, 신청서류를 심사해 4,000명 내외에게만 지급한다. 처음엔 서울시도 경기도와 유사한 청년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했지만 결국 백지화했다. 백지화 배경에는 수혜 대상자인 청년들조차 부정적 의견이 많았던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노동윤리 해이에 대한 우려가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본소득 주면 근로의욕 감소? 사실 아니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1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본소득제에 대한 웹조사 결과. 그래픽=송정근 기자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 측면에서 기본소득이 선별적 복지보다 효율적이다. 또 복지 수혜자의 인권보호 측면에서도 장점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복지 선진국에서도 기본소득 도입 확대를 망설이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우려가 모든 사람에게 돈을 주면 전반적으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점이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누가 더 열심히 일하려 하겠나. 

“이런 우려가 사실인지 실증하려는 실험이 2017년 핀란드에서 진행됐다. 정부가 실업급여를 받는 25~58세 국민 중 2,000명을 무작위 선발해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0만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서 기존의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과 비교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의 근로 의욕의 변화를 분석한 것이다.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은 직업훈련과 구직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반면 기본소득을 받는 집단은 그런 의무가 없었다. 2년 뒤 실험 결과는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이 오히려 구직활동을 더 많이 한 것으로 나왔다. 다만 두 집단 간의 차이는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현재 중간보고서가 나온 상태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을 도입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실업급여 대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근로 의욕이 더 많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된 셈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의 행복, 삶의 질, 미래에 대한 자신감, 건강 수준 등이 훨씬 높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남시가 2016년 1년 동안 연간 100만원어치의 지역화폐를 청년배당으로 지급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는 어땠나. 

“성남시의 청년배당은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모든 24세 청년에게 지급한 것으로, 실업자에게 선별 지급한 핀란드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또 비교 집단도 없어 핀란드만큼 정확한 정보를 얻긴 힘들다. 하지만 청년배당을 받았던 4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경제적 계층이나 학생과 비학생 구분 없이 모두 청년배당이 실질적 도움이 됐다고 밝혔고,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율도 전 계층에서 높았다. 청년배당이 중산층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복지라는 점은 입증된 셈이다. 이런 성과에 자신감을 얻어 청년배당을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의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현재 준비 중이다.”

 ◇기본소득, 언젠가 국민 기본권 될 거라 확신 
김교성 중앙대 교수가 기본소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배우한 기자
 -기본소득 제도가 확산ᆞ정착하고 성공하리라 보는가.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혁신’과 ‘포용’ 두 과제를 동시 달성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게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배제되는 사람 없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나눠줄 수 있는 가장 효율적 방법이 기본소득이다. 또 기본소득제도가 시행되면 실패의 두려움이 줄어들어 과감한 시도를 하는 혁신가들이 크게 늘 것이다. 소수 혁신가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생계 부담이 줄면서 좋아하는 일과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수많은 젊은이가 실패가 두려워 공무원 같은 안정적 직장에만 매달리는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혁신을 기대할 수 있겠나. 물론 기본소득에 대한 불안감이 광범위하다. 기본소득 도입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하면 ‘나는 기본소득을 받아도 계속 일을 할 것이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는 응답이 많다. 또 ‘기본소득 취지는 찬성하지만 내가 세금을 더 부담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도 많다. 이런 불안과 불신이 단기간 내 사라지길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참정권이 오랜 투쟁 끝에 기본권이 됐듯이, 기본소득도 언젠가는 우리 모두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권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인터뷰=정영오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김교성 교수는 

1967년생. 복지국가 발달에 관한 비교연구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1997)를 받고 현재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이자, 한국사회정책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빈곤‘ ‘동아시아 사회복지와 사회투자 전략‘ ‘기본소득이 온다’ 등을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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