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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바람 잘 날 없는 제주

입력
2019.05.1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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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제주 제주시 제주도청 정문 앞 4차선 도로 너머에는 제주 제2공항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이 설치한 10개의 천막이 6개월 가까이 철거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제주 제주시 제주도청 정문 앞 4차선 도로 너머에는 제주 제2공항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이 설치한 10개의 천막이 6개월 가까이 철거되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다. 김영헌 기자.

제주도청 정문 앞 4차선 도로 너머에 천막촌이 들어섰다. 지난해 12월부터 하나둘씩 보이던 천막은 10개로 늘어났다. 제주 제2공항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청 앞 천막촌 사람들’이 설치한 천막들이다. 제주도청 앞은 집회와 1인 시위 등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2015년 11월 제주 제2공항 건설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이 확정ㆍ발표되기 전까지 제주 신공항 건설은 제주도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원했던 숙원사업이었다. 제주도민들에게는 섬인 제주와 육지를 잇는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 항공기이고, 늘어나는 관광객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제주국제공항만으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공항 건설에 이견이 없었다. 결국 정부는 제주도민들의 바람과 폭발적인 여객증가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을 내놨다. 제2공항은 2025년 완공 목표로 총 4조8,700억원을 투입해 서귀포시 성산읍 일원에 건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제2공항 공사는 예상과 달리 3년 넘게 착공은커녕 갈등만 점점 증폭되고 있는 형국이다. 갈등의 원인은 불투명한 입지선정 과정이 가장 컸다. 성산읍이 건설 예정지로 발표되기 직전까지 해당 지역 주민들은 발표 사실을 전혀 몰랐다. 땅 투기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신의 살던 집과 밭이 공항으로 변한다는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2공항 반대운동은 처음에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심지어 ‘님비(NIMBY) 현상’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제주에 신공항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에서 성산읍이 아니더라도 도내 어느 한 곳에는 들어서야 되는데 대책도 없이 반대만 하는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4, 5년간 밀물 듯이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제주 섬 곳곳이 쓰레기로 넘치고, 렌터카 등 급증한 차량들로 교통지옥으로 변하는 등 제주의 수용능력이 한계에 직면하면서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데 제2공항이 건설된 이후 더욱 늘어날 관광객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지게 됐고, 제2공항을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각도 점차 달라졌다. 여론조사에서도 도민들의 ‘변심’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달 한 지역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 제주지역 공항 시설 확충 방안으로 ‘성산읍 제2공항 추진’(30.5%)보다 ‘기존 제주공항 확장’(46.9%)을 꼽은 도민들이 더 많았다. 이는 입지선정 발표 직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성산읍 제2공항 추진’에 대한 기대감은 수그러진 반면 현실에서의 불편함이 더욱 커졌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와 국토교통부는 기존의 제2공항 건설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국토부는 정부의 사회간접사업(SOC) 사업 중 처음으로 주민들 요구를 반영해 사업지 선정 타당성 재조사까지 실시했고, 기존 계획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도 유튜브 방송까지 동원하면서 제2공항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성산읍제2공항반대대책위와 시민단체들은 제2공항 입지 선정 내용에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제2공항 대신 기존 제주공항 확장 방안이 더 타당성이 있다고 맞서고 있어 제2공항 갈등 문제는 점점 더 꼬이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제주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제주해군기지 갈등을 비롯해 국내 첫 영리병원 개원 허가 여부 논란, 비자림로 건설 논란 등 지역사회를 두쪽으로 쪼개는 갈등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제2공항 문제에 대한 해법찾기도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되고, 제주의 미래를 바꿀 중요한 문제인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민의 뜻을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더 이상 제주를 ‘갈등의 섬’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김영헌 호남ㆍ제주본부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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