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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작은 흙마당이 있다. 작년 여름에 이 집이 아주 맘에 들었던 데는 이 흙마당의 역할이 컸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잡풀과 야생화들이 무성했지만 그것대로 생명력이 넘친달까? 다만 넝쿨째 자라는 부스스한 장미는 부담스럽기는 했다. 건물은 알아서 손을 보겠는데 정원은 대체 어떡해야 하는지. 정원 프로젝트,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았다. 집을 수리하고 사무실 정리를 하느라 여름과 가을을 보내 버린 뒤 겨울의 흙마당은 거무스름하게 마른 잡초만 남아 있었다. 봄이 되면 뭘 해야 하는데 할 줄 아는 건 없고, 작은 화단이 볼 때마다 고민이었다.

그 사이 한 것이 있긴 하다. 잡풀들은 다 숨 죽고 갈색으로 변해 가는 넝쿨 장미의 부스스한 헤어를 깔끔하게 잘라 준 것이다. 장미는 한 그루인데 사방으로 가지가 나서 무시무시했다. 뽑아버리려 했던 덩굴 장미가 살아남게 된 것은 이 집의 옛 주인인 할머니가 오래 전부터 키우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의 기억들을 가능하면 남겨두려는 시도는 정원 나무에게도 해당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덩굴 장미의 사연도 궁금해졌다. 할머니의 삶도. 가시에 찔려 가며 가지치기한 것은 잘라낸 잡초들과 흙마당에 쌓아 두었다. 버리려면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하는데 부피가 엄청나서 마를 때까지 남겨 두었다. 눈비에 썩어 퇴비가 되어 흙에 양분을 주어도 좋겠다. 몇 달 후 바싹 마른 것들을 치우고 보니 아담하고 고요한 흙마당 본연의 모습이 드러났다.

봄이 가까워오자 슬슬 뭔가 해야 했다. 아직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정원에서 뭔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민들레류의 하늘거리는 꽃이 먼저 자리잡았다. 잡초의 생명력이라니! 하긴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지만 그들도 엄연히 지구에 같이 사는 생명들이니까. 우리의 정원을 잡초에게 넘겨줄 수 없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네 명은 일단 길모퉁이 화원에서 뭐라도 사서 심기로 했다. 때마침 노랗고 작은 꽃을 피운 듣도 보도 못한 식물 모종이 있었다. ‘애니시다’라고 부른단다. 모종 6개를 사 왔는데 며칠 만에 3개가 죽었다. 외부에 뒀더니 시들시들해졌고 급히 흙에 심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틈나는 대로 나가서 쓰다듬어보고 물도 줘보지만 잎은 말라가고 가지는 축 처진다. 갔구나. 주인을 잘못 만나서.... 그 와중에 잡초는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2차 도전은 딸기 모종. 딸기가 열린다는 말에 혹해 ‘그래도 역시 유실수지’라며 사왔다. 이번에는 빛의 속도로 흙마당에 심었다. 딸기는 싱싱한 잎을 키워 갔다. 휘청거리는 잎사귀가 잘 서 있도록 나무젓가락을 덧대는 정성도 보였다. 매일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잎사귀 사이로 붉은 것이 맺힌 것을 보았다. 손톱만한 딸기였다. 그래, 너는 무농약 딸기다. 첫 딸기 수확을 자축하며 네 조각으로 잘라 사무실에서 일하는 네 명이서 나눠 먹었다. 그 맛이란! 우리는 정원이 주는 기쁨을 알아버렸다.

잊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누나는 포도나무 가지를 마당에 심었는데 그것이 자라 마당을 뒤덮고 포도가 영글었다. 나는 그 포도를 따 먹으며 작은 가지 하나가 이토록 커져서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딸기맛을 보니 모두들 정원에 더 열심이다. 류 실장은 매일 출근하면 물을 준다. 본인이 사온 딸기 모종이라서 더 애정을 보인다. 예전에는 커피를 마시며 스마트폰을 봤는데 이제는 마당에 나가 딸기가 자랐는지, 애니시다가 생생한지, 체리세이지와 로즈마리가 좋은 향이 나는지 본다. 초대받지 않은 잡풀들이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애기똥풀과 쇄기풀이란다. 본격적으로 붉은 장미가 피고 있다. 최 작가가 장미 몇 줄기를 잘라 화병에 꽂아 창가에 두었다. 흙마당이 정원이 되는 동안 일어난 변화들이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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