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지역에 12만 병력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부인하며 ‘이란 침공설’ 진화에 나섰으나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중동 일대에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데다, 미국이 군사 옵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아 사태 전개를 예단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미국은 이란과 국경을 접한 이라크에서 근무하는 자국 대사관의 일부 직원들에게 긴급 철수령을 내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란 대응을 위해 중동에 12만 병력을 파견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받고 “가짜 뉴스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그것을 계획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소식통을 인용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시로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이 이란 도발 시 12만 병력 파견 방안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 이야기가 어디서 나왔나. 뉴욕타임스?”라고 물은 뒤 “뉴욕타임스는 가짜 뉴스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그런 계획을 하지 않기 바란다”면서 “만약 그것을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할 것이다”고 말해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날 러시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이란과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미국의 이해가 공격받는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이란 측에 분명히 해왔다”고 경고했다.
이란도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미국에 대한 비판을 이어 갔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각료들에게 한 연설에서 “우리나 미국 어느 쪽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면서도 “미국의 현 정부와 협상하는 것은 해롭다. 그들은 품위 있는 사람들이 아니며 어떤 것도 지키지 않는다”며 미국과의 협상 거부 방침을 재확인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 강경파가 위험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며 미국에 화살을 돌렸다.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 가능성을 부인했으나 중동 정세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처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2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 2척 등 선박 4척이 공격을 받은 데 이어 14일에는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 소유 석유 펌프장 두 곳이 폭발물을 실은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예멘 후티 반군은 드론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후티 반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선박 공격에도 이란이 연관된 것으로 미국은 의심하고 있다.
미국은 아울러 이란이나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 단체가 이라크와 시리아에 배치된 미군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경계 태세를 높이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이 같은 이란의 위협에 대응해 군사 옵션의 범위를 논의하고 있다고 미 정부 관리는 전했다.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무부가 3~4년마다 각국 외교관을 초청해 개최해 온 지역 안보 포럼도 연기됐다. WP가 입수한 국무부 메모에 따르면 고위 당국자들이 이란의 위협을 평가하고 대응하기 위해 현장에 계속 있어야 할 필요로 연기됐다는 것이다. 중동전문가인 베커 와서는 WP에 “미국과 이란 간 의심이 증폭되면서 작은 사건이 큰 충돌로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가운데, 미 국무부는 15일 “미국인과 미국 시설을 노린 이란의 새로운 위협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며 주이라크 미국 대사관, 총영사관의 비(非)긴급 업무 담당 직원들에게 ‘즉각 출국하라’고 지시했다. 국무부는 또, 미국인들에게 이라크 여행을 하지 말라고도 권고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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