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변호사 이형석씨
프로 복서 출신으로 최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인하대 로스쿨 졸업생 이형석씨가 이달 3일 인천 미추홀구 인하대 본관 앞에서 복싱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하대 제공

“2010년 배기석 복싱 선수 사망 사건은 저에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한국권투위원회는 선수 대전료의 2%를 의료비 등으로 쓴다며 보험료 명목으로 가져갔었는데, 유족들은 보상을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적립한 돈이 없다는 이유였죠. 힘이 없으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였습니다.“

올해 2월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달 제8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이형석(29)씨의 꿈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2011년 재수 끝에 고려대 체육교육과로 진학한 것도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2010년 7월 슈퍼플라이급 한국 타이틀 매치에서 8회 TKO패한 뒤 나흘 뒤 사망한 ‘비운의 복서’ 배기석 선수를 보면서 그는 꿈을 수정했다.

“배 선수는 시합 중에 크게 다쳐 세상을 떠났지만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은 부당한 계약 조건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부당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스스로 힘을 길러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씨도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선수로 활약한 복싱인이다. 복싱 선수가 멋있어 보여 우연히 운동을 시작한 이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7년에는 프로 무대에도 데뷔했다. 2008년 프로복싱 신인왕전까지 프로 전적은 2전 2패. 복싱 선수로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프로 무대에서 좌절한 것은 고교 진학 후 급격하게 나빠진 시력 때문이었다. 접근전에 능한 인파이트 유형이었던 그는 시력이 나빠지면서 원거리에서 싸우는 아웃복싱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시합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출전 기회도 얻지 못했다.

“미술을 전공하신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가 복싱선수를 직업으로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셔서 고교 진학 후에는 학교 운동부가 아닌 체육관 소속으로 뛰면서 운동하는 것을 숨겨야 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하는 결정도 혼자 내려야 했습니다.”

친구들과 교육방송 도움을 받아 공부해 대학에 입학한 이씨는 2015년 졸업 후에 곧바로 로스쿨에 진학했다. 법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이 되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3년간의 군 복무 후에 영화 ‘재심’의 실제 주인공으로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도 활동했던 박준영 변호사와 같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 다음 목표다.

“자신은 힘들게 살면서도 어려운 이들을 돕는 많은 공익 변호사들은 투철한 사명감이 있지만 저는 아직 그런 그릇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부조리한 일을 바로 잡고 도움을 요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씨는 지난달 별세한 고 조양호 전 인하대 학교법인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전 한진그룹 회장)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이씨는 2016년 대학 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조 전 이사장이 로스쿨 두 학기 학비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선물한 것이다.

그는 “조 전 이사장님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라며 “조만간 묘소를 찾아 합격 소식과 함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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