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도 이전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자카르타가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처음 수도가 된 것은 1527년 6월 22일. 당시 술탄이 적들을 물리친 뒤 자야카르타(승리의 도시)로 개명하고 도읍으로 정했다. 1619년 네덜란드는 바타비아로 이름을 바꾸고 도시를 작은 암스테르담으로 꾸몄다.
수도 이전은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처음 추진했다. 바타비아를 상업 수도, 반둥을 행정 수도로 삼으려 했으나 세계 대공황과 세계대전 발발로 중단됐다. 1942년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은 환심을 사려고 원래 도시 이름을 돌려줬다. 이후 네덜란드 및 연합군과의 독립전쟁 중엔 족자카르타 등이 비상 수도였고, 자카르타는 1949년 말 다시 수도가 됐다.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웅이자 국부(國父)인 수카르노는 1957년 중부칼리만탄주(州)의 팔랑카라야를 미래 수도로 낙점했다. 인도네시아 군도(群島)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위치, 광활한 대지를 강점으로 꼽았다. 흐루쇼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수카르노를 위해 팔랑카라야에 공항을 지어줬을 정도다. 수카르노는 23년 집권한 뒤 수하였던 수하르토에게 쫓겨났다.
수하르토는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50㎞ 떨어진 종골에 행정 수도를 건설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군부 독재로 32년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나 1998년 대규모 시위로 권좌에서 밀려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하르토의 수도 이전은 민심 이반을 돌려세우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첫 국민직선제 대통령으로 10년(2004~2014년) 집권한 유도요노는 2010년 경제ㆍ상업 수도와 정치ㆍ행정 수도 분리 방안을 검토했으나 탁상공론에 머물렀다. 자카르타의 환경 오염과 인구 과잉 문제가 거론됐으나, 네덜란드 식민 통치 때 수도로 계획됐던 반둥을 제외하는 선에서 그쳤다.
조코 위도도(별칭 조코위) 대통령은 2017년 4월에 이어 올해 4월에도 수도 이전 계획을 밝혔다. 계획 자체는 새롭지 않으나 발 빠른 행보와 추진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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