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같은 면역체계를 가진 돼지를 만들어 질병치료에 유용한 생체물질이나 향후 인체 이식이 가능한 장기를 얻어내는 연구가 국내에서 본격 시작된다. 연구진은 3년 안에 사스나 메르스 같은 대유행 감염병의 치료용 항체를 생산해낼 수 있는 돼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을 앞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14일 건국대 인간화돼지연구센터는 사람 줄기세포를 주입한 의료용 돼지의 몸 안에서 사람에게 활용 가능한 세포나 조직을 생산하는 연구가 최근 대학 내 기관생명연구윤리위원회(IRB) 심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4년 전부터 김진회 센터장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인간화 돼지’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인간화 돼지 연구기간은 총 7년, 연구비는 총 86억원이다.

연구진은 면역능력이 결핍된 돼지의 초기 수정란에 사람의 ‘유도만능줄기세포’를 주입하고 대리모 돼지에 이식한 다음, 태어난 새끼 돼지의 몸에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세포나 항체 등을 얻어낸다는 계획이다.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다 자란 인체 세포를 배아줄기세포처럼 어느 세포로나 자랄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발생 초기 상태로 되돌려놓은 것으로, ‘역분화줄기세포’라고도 불린다. 실험실에서 만들 때 배아줄기세포처럼 사람 난자를 사용하지 않아 윤리 문제가 없다. 이번 연구에선 공공기관이 연구용으로 보관하고 있거나 상업적으로 과학자들에게 시판되고 있는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쓰이게 된다.

건국대 인간화돼지연구센터가 지난 2014년 개발한 면역결핍 돼지. 면역기능에 핵심인 면역세포 3가지가 체내에 없다. 건국대 제공

면역능력 결핍 돼지는 프로젝트 초기인 지난 2014년 연구진이 이미 개발했다. 생체 면역기능이 발달하는 데 필수인 유전자 2가지가 제거된 이 돼지는 면역기관의 하나인 가슴샘(흉선)이 없다. 핵심 면역세포인 T세포, B세포, 자연살해(NK)세포도 없다. 이 돼지의 수정란 역시 그대로 발달하면 면역세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따라서 연구진이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넣은 면역결핍 돼지 수정란이 대리모의 몸에서 자라 태어날 경우 이 돼지가 갖고 있는 면역세포와 흉선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의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것이 된다. 사람의 면역체계를 가진 돼지로 태어난다는 얘기다. 만약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를 이 돼지에 감염시키면 해당 감염병에 대항하는 데 필요한 인간 항체가 돼지 체내에서 만들어진다.

김 센터장은 “사람 면역체계를 가진 돼지가 마치 인간 항체 만드는 ‘공장’ 같은 역할을 해서 감염병 대유행 같은 긴급 상황이 닥칠 때 바로 치료용 항체를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 돼지에서 사람 면역세포를 추출해 암 치료용으로 쓰거나, 사람 조혈모세포(혈액을 만드는 세포)를 뽑아내 혈액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연구진은 내다보고 있다.

이 단계까지 가면 이론적으로는 사람 장기도 돼지 몸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동물을 기반으로 생성된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게 법으로 금지돼 있다. 때문에 연구진은 사람 면역체계를 가진 돼지를 의약품이나 세포치료 기술 개발 등 제약산업에 먼저 활용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았다.

돼지를 이용해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약이나 장기를 생산하려는 연구는 현재 미국과 일본이 앞서 있다. 연구진의 목표가 이뤄진다면 두 나라를 제치고 세계 선두그룹으로 올라갈 수 있다. 연구진에 따르면 미국에선 돼지 수정란에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넣는 시도를 했으나, 13주까지 자란 뒤 대부분의 세포가 사멸했다. 일본에선 지난달 동물을 기반으로 만든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에 돼지 수정란에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넣어 돼지 체내에서 사람의 신장과 췌장을 만드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미국과 일본 연구 대부분 일반 돼지를 사용한다”며 “면역결핍 돼지를 활용하는 우리 연구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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