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원내대표 출마선언 후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의 정치스승이자 ‘영원한 민주주의자’로 불렸던 고(故)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 의원은 8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결선투표에서 125표 중 76표를 받아 친문 핵심인 김태년 의원(49표)를 제치고 당선됐다. 오대근 기자

우리 정치사에는 군대조직과 학생조직이 강렬하게 등장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세력이 헌정사에 두 집단이 있다. 박정희 5·16주체세력과 전두환 신군부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다른 군인들과 달리 직접 전쟁을 치른 세대란 점이다. 6·25전쟁과 월남전을 현장지휘관으로 참전한 남다른 군부집단이다. 최고권력을 탈취할 만큼 ‘간’이 컸던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정치를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세상을 바꾸는 일로 정의한다면, 과거 386 운동권이야말로 대표적이다. 이들 역시 집단적인 세계관으로 국가개조를 꿈꿨던 그룹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중후반 김대중·김영삼을 주축으로 한 제도권 야당과 함께 거리에서 87년 민주화 시위정국을 이끈 공을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들이 현 여권의 586 정치인그룹으로 성장했다. 과거 민주당엔 3대 기득권 주류가 있었다. 친노와 386, 호남이다. 호남세력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시 문재인-박지원 당권대립을 기점으로 변방으로 밀려나 국민의당을 거쳐 현재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에 흩어져있다. 집권당은 지금 친노·친문과 586진영간 협력과 견제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들은 세대적으로 인물군이 겹친다. 열린우리당의 정동영·김근태가 양대 계파를 구축할 때 386들은 대다수 김근태 쪽에 집결했고, 최근까지는 정세균계 등에 분산돼 있었다. 그러면서도 강한 동료의식으로 뭉쳐져 대단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느슨한 이익공유집단 같은 현 자유한국당 쪽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야당이 된 보수진영이 좀처럼 맥을 못추는 이유는 이런 태생적 체질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지난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문으로 분류된 이인영 의원이 선출된 것은 조직력과 구도, 이슈에서 모두 압도한 결과다.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에 86그룹 대표정치인인 그는 ‘민평련(구 김근태계)’과 ‘더좋은 미래’, 전해철 의원이 이끄는 친문 직계그룹(부엉이 모임)의 지지로 당선됐다. 이인영 쪽은 이해찬 대표의 측근인 김태년, 중도성향 노웅래 의원 측과 달리 지지표로 카운팅한 의원수를 그대로 적중시켰다. 흔들리지 않는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의 원내대표 당선을 도운 한 의원은 “연설문이 공감을 얻었고, 총선에 대한 의원들의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며 “총선에 가장 민감한 현직의원들이 당권파인 김태년 의원이 됐을 경우 보수언론이 어떻게 제목을 뽑을지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인영은 자주 쓰던 ‘노동’ ‘통일’이란 용어를 자제하고, “부드러운 남자”를 자처했다.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86그룹이 아닌 비운동권 출신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1차 투표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은 다른 의원은 “친문 강성으로 여당 투톱이 채워지는 데 비호감이 있었다”며 “이해찬 대표의 말실수를 견제할 필요성이나 공천싹쓸이에 대한 불안심리가 컸다”고 토로했다.

이 원내대표의 정치적 멘토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바보 김근태’로 불렸다. 대선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02년 3월 당시 권노갑 고문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을 해 스스로 경선중단을 택하는 초유의 선택을 했다. ‘아름다운 꼴찌’란 말을 남긴 채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공약이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자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가 ‘김근태 정신’을 실천할 길을 제시해주는 일화다.

청와대에 민생현실을 전달하려면 여당 내 건강한 경쟁과 역동성은 기본이다. ‘촛불정부’로부터 떠나는 민심을 돌리는데, “제 안의 낡은 관념, 아집부터 불살라버리겠다”며 “보수보다 먼저 혁신해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이인영의 약속이 빛을 발하길 기대하고 싶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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