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조폭 주연 ‘악인전’으로 칸 레드카펫에 할리우드 리메이크까지
이제는 ‘월드스타 마블리’라고 불러야겠다. 영화 ‘악인전’ 개봉(15일)을 앞두고 해외에서 잇따라 낭보가 들려왔다. 명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이 이끄는 발보아 픽처스와 할리우드 리메이크 제작에 합의했고, 14일 개막하는 제72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대돼 조만간 레드카펫을 밟는다. 개봉도 하기 전 해외 104개국에 판매도 됐다. 한국 관객들이 인정한 배우 마동석(48)의 ‘러블리한’ 매력을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때다. 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한 마동석은 “두루두루 좋은 일이 생겨서 기쁘지만 무엇보다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기대감에 설렌다”며 수줍게 웃었다.
마동석이 좀비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영화 ‘부산행’이 2016년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이후 ‘마동석’이라는 이름은 해외에서 꽤 유명해졌다. 그는 “해외 영화 관계자들이 흥행이 잘 안 된 출연작까지 다 찾아서 봤더라”며 “‘부산행’ 덕분에 나처럼 보잘것없는 배우가 호감을 산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꾸준히 해외 영화계와 협업을 준비해 온 마동석은 ‘악인전’ 할리우드 리메이크에 스탤론과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할 뿐 아니라 원작과 똑같은 배역을 제안받아 출연도 한다. 스탤론도 올해 칸영화제에 참석할 예정이라 두 사람의 깜짝 만남을 기대해 볼 만하다. “어린 시절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 ‘록키’를 보고 권투를 시작했고 영화배우를 꿈꾸게 됐어요.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그 일이 저에게도 일어났네요.” 그는 마블 영화 ‘이터널스’ 출연 물망에도 올라 있다.
‘악인전’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이원태 감독과의 첫 작업이다. ‘형사와 조폭의 공조’라는 흔한 소재를 색다르게 풀어낸 시나리오에 매료됐다. “디테일과 반전이 저의 상상을 뛰어넘었어요. 언젠가 ‘폭력의 끝판왕’이라 할 만한 악당을 꼭 연기하고 싶었는데 장동수가 바로 그런 캐릭터였죠. 그동안 경쾌한 마동석, 액션 마동석을 보셨다면, 이번엔 악랄한 마동석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중부권을 장악한 폭력조직 보스 장동수는 어느 날 접촉사고를 가장해 접근한 한 사내에게 불시에 습격을 당한다. 난투 끝에 겨우 목숨은 구했지만,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그는 사내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런 장동수 앞에 열혈 형사 정태석(김무열)이 나타나 사내의 정체가 연쇄살인마라며 증언을 요구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연쇄살인마 K(김성규)를 잡기 위해 협력한다. 조폭과 경찰이 공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서로 이용하고 경계하는 모순적 상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마동석은 “장동수는 주먹 하나로 보스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이라며 “태도에 여유가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거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마초스러우면서도 유쾌했다면, 이 영화에선 웃음기를 싹 지웠다. “평소보다 대사 템포를 느리게 했고 힘을 뺐어요. 클로즈업 장면이 많아서 표정 연기도 신경 썼고요. 중간에 웃음을 주는 대사들도 있지만 적정 선을 넘지 않으려 자제했어요. 장동수는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이거든요. 미화하면 안 된다고 봤어요.”
장동수가 샌드백에 펀치를 꽂아넣는 첫 등장부터 섬뜩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샌드백이 구구절절 설명 없이도 장동수의 잔인함을 단박에 전달한다. ‘액션 장인’ 마동석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장면이다. 우람한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도 많았다. 김무열과 난투극 장면을 찍다가 마동석의 손가락 모양대로 김무열의 가죽 재킷이 찢어진 적도 있다. 의상이 딱 그것 한 벌뿐이라서 꿰매 입고 촬영해야 했다고 한다. 마동석은 조폭 보스답게 세련된 수트를 여러 벌 입고 나오는데 액션만 하면 뜯어지고 찢어져서 모두 스판 소재로 제작했다. 마동석은 “팔을 폈을 때와 구부렸을 때 두께가 1인치 정도 차이 난다”며 “칸영화제에서도 내 옷장에 있는 스판 턱시도를 입어야 할 듯하다”고 웃었다.
‘마동석표 액션’이 반복된다는 우려 섞인 시선이 있다는 것도 그는 잘 알고 있다. “제가 형사 역과 조폭 역을 많이 연기했어요. 그런데 모두 조연이었어요. 형사로 주연을 한 건 ‘범죄도시’(2017)가 처음이었고, 조폭으로 주연인 건 ‘악인전’이 처음입니다. 특화된 액션을 조금 더 시도해 보려고요. 색다른 이야기는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요. 지금 찍고 있는 ‘백두산’에선 지질학 교수 역할이고요, 웹툰 원작인 ‘시동’에선 예쁜데 기괴한 캐릭터예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마동석 출연작들은 언젠가부터 ‘마동석 장르’라 불리고 있다. 스크린에선 ‘범죄도시’와 ‘챔피언’ ‘성난 황소’(2018)로 이어졌고, 안방극장에선 OCN ‘나쁜 녀석들’(2014)과 ‘38사기동대’(2016)가 인기를 끌었다. 그는 창작집단 ‘팀 고릴라’를 이끌며 영화 기획도 하고 있다. ‘챔피언’과 ‘성난 황소’뿐 아니라 ‘동네사람들’과 ‘원더풀 고스트’(2018)도 그의 기획이다. 2편 제작에 곧 착수하는 ‘범죄도시’는 기획안이 4편까지 준비돼 있다. 요즘엔 ‘마동석 장르’가 진화해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수식어도 생겼다. 마동석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면서 “나를 놀리는 말이라면 놀림받겠다”며 껄껄 웃었다.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초심을 이야기한다. “단역 하던 시절에는 한 해 영화 10편을 찍었는데 촬영한 날은 보름밖에 안 되던 때도 있었어요. 내 자리가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헝그리 정신’이 생긴 것 같아요. 어느 작품이든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해 왔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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