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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 아니면 방치”… 조현병 재활 ‘지역 인프라’ 구축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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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입원 아니면 방치”… 조현병 재활 ‘지역 인프라’ 구축 시급

입력
2019.05.15 04:40
수정
2019.05.15 07:5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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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인득 사건 한 달, 조현병 대책은 

[저작권 한국일보]14일 오후 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인 서울 서대문구 ‘한마음의 집‘에서 회원들과 최동표 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다녀온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사진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마음의 집은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이 거주하면서 지역 사회에 적응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최 원장은 "퇴원 후 돌아갈 곳 없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지역사회 재활은 필수이지만 그 동만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지원은 없다"고 지적했다. 오대근기자 /2019-05-14(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14일 오후 정신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인 서울 서대문구 ‘한마음의 집‘에서 회원들과 최동표 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다녀온 울릉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사진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마음의 집은 퇴원한 정신장애인들이 거주하면서 지역 사회에 적응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최 원장은 "퇴원 후 돌아갈 곳 없는 정신장애인들에게 지역사회 재활은 필수이지만 그 동만 말만 무성할 뿐 구체적인 지원은 없다"고 지적했다. 오대근기자 /2019-05-14(한국일보)

“그 땐 폐쇄병동 외엔 방법이 없었어요.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면 동생도, 우리 가족의 삶도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이민수(가명ㆍ61)씨의 탄식이다. 이씨는 40여년 동안 조현병 환자인 동생을 돌봤다. 병보다 이씨 가슴을 더 아프게 하는 건 폐쇄병동 이외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입원시켜도 쓰라렸다. 면회 때면 독한 약 때문에 ‘무기력하고 멍한 로보트’가 된 동생을 만나야 했다. 그렇다고 데리고 나오면 힘에 부치고 버거웠다.

이씨가 동생의 조현병을 알게 된 건 19세 무렵. 동생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병원 진단을 받았는데 조현병 판정이 나왔다. 어려운 가정 환경, 사춘기 탓이라 생각했던 말과 행동이 병 때문이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씨는 별다른 수를 내지 못했다. 증상이 심해지면 강제 입원시키고 좀 나아지면 데리고 나왔다.

동생은 강제입원과 퇴원, 치료감호소 입소를 반복했다. 끼고 가르쳐볼 요량으로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켜 직원들과 함께 살도록 해봤지만, 공장에서 도망쳐 무전취식하다 다시 입원되기 일쑤였다. 시설들조차 ‘관리불가’를 이유로 동생의 입소를 거부하기도 했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동생은 유순해졌다. 자식을 다 키운 이씨 역시 바로 옆에서 동생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동생의 희끗희끗한 머리가 더 안타깝다. 이씨와 형제들 덕분에 함께 여행 다닐 정도로 동생은 호전됐다. 젊은 시절 옆에서 누군가 그 역할을 도와 줬다면 어땠을까.

 ◇‘탈원화’하는데 탈원화 ‘대책’은 없었다 

지난달 17일 진주 안인득 사건을 정점으로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조현병 환자 관리 문제가 우리 사회의 이슈로 등장했다. 사건이 터진 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일단 사법입원제 도입 같은 강제입원제 강화가 관심사로 부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대한다. 입원은 일시적 증상 완화 방법일 뿐이다. 입원이 끝나면 환자와 가족은 다시 방치되고, 입원과 퇴원을 몇 차례 반복하다 치료와 재활을 포기하기 일쑤다.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지역사회 재활 인프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개정 이전의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이유로 인권침해란 지적을 받아왔다. 조현병 환자 평균 입원 기간이 OECD 평균의 4배인 196일에 달하는 등 기형적인 장기입원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이 법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헌법재판소 결정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국회는 급히 개정안을 마련했다. 방향은 좋았다. ‘시설 입원’보다 ‘사회 생활’을 우선시 하는 ‘탈원화(脫院化)’ 원칙 아래 강제입원 대신 지역사회 중심 치료를 강화하겠다 했다. 정작 반대는 의료계와 환자, 가족 쪽에서 나왔다. 지역사회 치료를 어떻게 할지, 구체적 방법이 없었다.

당시 정신보건법에 대한 헌재 소송에 참여했던 정신장애인권연대 ‘카미’ 사무총장 권오용 변호사는 “탈원화 이후를 대비하는 예산 마련 등 구체적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예산이다. 법 개정 직후인 2017년 기준 1인당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은 3,889원이었다. 법 개정 전인 2015년(3,827원), 2016년(3,650원)과 별 차이가 없다.

지역사회 치료를 뒷받침해야 할 예산은 그대로인데 탈원화만 공식화했으니 결론적으로 개정안은 환자를 가족들에게 알아서 하라 떠넘긴, 무책임한 법안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비자의적 입원은 5만1,416명(2016년)에서 2만8,371명(2017년)으로 크게 줄었지만, 자의적ㆍ동의 입원이 크게 늘어 전체 입원자 수는 7만명대로 비슷한 수준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재활시설 예산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정신재활시설 예산 현황 그래픽=송정근 기자

 ◇탈원화, 예산 뒷받침 없인 공염불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 이런 문제가 있다지만, 그렇다고 강제입원제만 강화하는 건 2016년 이전으로 되돌아가자는 말과 다름없다.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이정하 대표는 “옛 정신보건법도 정신장애인의 여의도광장 질주사건, 대구 나이트클럽 방화사건 등이 있은 후에 만들어졌다”며 “일부 정신장애인의 범죄에만 초점을 맞춰 전체 정신장애인을 위한 법을 바꿔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강제입원제 보완을 뛰어넘어,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력과 예산 강화방안이 대책에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법입원제 도입 같은 건 필요한 여러 대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며 “정신 재활 관련 시설과 인력 확충은 물론, 의사ㆍ사회복지사 등으로 팀을 꾸린 ‘찾아가는 치료 서비스’ 등이 여러 대책들이 종합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외에서도 정신장애인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관련 법과 제도가 정비됐지만, 우리처럼 강력범죄 예방에만 일방적으로 관심이 쏠리진 않았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 문제를 다룰 때면, 정신장애인 고용률(10.8%)이 전체 장애인 가운데 가장 낮고, 정신장애인 자살률이 정상인의 8.1배에 이르며, 진주 등 조현병 환자 사건이 많이 일어난 경남은 2017년 기준 인구 1인당 지역 정신보건예산이 2,557원으로 인천(2,327원)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낮다는 사실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려잡듯이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역사회 정신건강 평균 예산 그래픽=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지역사회 정신건강 평균 예산 그래픽=송정근 기자

 ◇ 범죄에만 초점 맞추지 말길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범죄 대책‘으로만 보기보다는 포괄적인 정신보건대책으로 접근하기를 제안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 등 26개 시민사회단체 역시 지난 6일 성명서를 내놓고 “보호와 지원 없이 사회적 격리와 배제에 초점을 두는 대안은 또 다른 폭력들을 부르는 조치일 뿐”이라며 △지역사회 정신건강복지 인프라 확충 △당사자 및 가족 지원 강화 △정신보건예산 5% 단계적 확보 등을 요구했다. 가장 큰 대전제는 역시 돈 문제다. 우리나라 정신보건예산 비중은 전체 보건예산 중 1.56%에 불과하다. WHO 권고인 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위기 응급에만 관심이 몰리다 보니 아무리 대책이 발표돼도 지역사회 정신재활을 위한 예산 확보는 요원하다”며, “당장의 위기 개입도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지역사회 구멍을 메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어 “그러기 위해서는 기재부가 움직여야 하고, 또 정신장애인 복지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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