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체감경제와 괴리 큰 대통령 시각
획기적 정책전환 없으면 희망 없어
무역규모 1조달러,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겼는데도 경제가 위기라는 우려가 많다. 수치상으로는 그리 나쁠 것이 없는데 왜 이런 우려가 나오는 걸까. 실제 경제학자 100명을 상대로 한 언론 조사에서 80% 이상이 경제상황이 ‘위기 또는 위기 직전’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사실 주변을 돌아보면 이 같은 응답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곳곳에 문을 닫은 상점이 많고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인터뷰에서 “거시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가 크게 성공을 거뒀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도 “기초체력이 튼튼하다”고 했지만 체감 경제와는 괴리가 큰 인식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 관료들이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고집하다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지금은 외환보유고가 4,000억달러 이상이어서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실물위기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제조업 가동률은 계속 떨어지고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고 있다. LG전자도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긴다. 국내 제조업체 5,000여개가 해외에서 만든 일자리가 250만개를 넘어간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불황이 이어지니 성장률도 정체다. 성장이 ‘만능 칼’은 아니지만 성장 없이는 분배를 지속하기 어렵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막대한 세금을 각종 복지에 쏟아 붓지만, 재원이 뒷받침되어야 지속할 수 있다.
성장이 이어지던 시기에는 불평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장의 과실이 분배로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 시기에는 양극화가 심화하고, 대오에서 탈락하는 사회적 약자가 늘어난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분배 시스템이 순탄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더욱이 역대 정부가 목을 맸던 일자리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20여년간 심각한 수준이지만 해결난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결과가 아닌 동기’로 평가받으려 했던 분배와 일자리 정책도 대체로 실패로 판명되고 있다. 오히려 “일자리를 늘리지는 못해도 줄이지는 말았어야 했다”는 원망이 뼈아프다. 고용노동부는 마지못해 일자리 사업에 대해 반성문도 썼다. 속도조절에 실패한 탓도 있지만 불가역적인 성격이 더 문제였다.
청년들이 영혼이라도 팔려 해도 일자리가 없다. 지난해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5%를 넘었다. 지금 청년들은 직장을 박차고 나오면서 ‘XXXX you money!’라고 외치며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던 앞 세대와는 형편이 다르다. 이제 우리 사회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과 일자리가 있는 사람,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뉜다. 부자와 빈자가 갈리고 점차 극단적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한 세대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세대 내의 극단적 불평등은 다음 세대의 계층이동마저 어렵게 하고 불평등을 증폭시킨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이 나타난다. 부모세대 소득이 자식세대의 소득에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되면서 세대 간 계층이동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이론이다. (‘불로소득 자본주의’, 가이 스탠딩)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고용참사에 따른 저소득층에 대한 분배 악화를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는 자칫하면 ‘경제적으로 부모세대보다 못한 자식세대’라는 비극의 길에 첫발을 뗀 정부로 기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이번 정부만의 문제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 역시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고 어느 나라에서도 일자리는 정부의 무한책임이다.
문재인 정부가 10일 출범 2주년을 맞이했다. 향후 6개월만 지나면 반환점을 돌기 때문에 정책을 과감히 추진할 수 있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기 바란다. 포용성장이 ‘포장성장’으로 둔갑해선 안 된다. 실패를 통계 꼼수나 궤변으로 합리화해서는 미래가 없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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