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실시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인영 의원이 예상을 깨고 비교적 큰 표차로 친문 주류인 김태년 의원을 누르고 20대 국회 마지막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친문 일색의 지도부 구성이 내년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원들의 전략적 판단이 이 의원이 몰표를 얻은 배경으로 꼽힌다.
이신임 원내대표가 천신만고 끝에 집권여당을 이끄는 중책을 맡게 됐지만, 장기화된 야당과의 대치상황을 푸는 게 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생긴 갈등과 이에 따른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과 무더기 고발은 여야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조차 쉽지 않게 만들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의 뒷이야기를 살펴보고 향후 국회 정상화 가능성을 전망하기 위해 본보 국회팀이 카톡방에 모였다.
맛있는 정치(정치)=이 원내대표가 1차 투표부터 선두로 치고 나갈지는 예상을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특히 강력한 경쟁자인 김태년 의원까지 쉽게 꺾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여당탐구생활(탐구생활)=원내대표 선거는 뚜껑을 열기 전까진 알 수 없다고 하는데, 이번 선거는 그 중에서도 가장 오리무중 선거였습니다. 김태년 대세론이 나올 정도로 초반엔 이해찬 대표 측근이자 친문 핵심인 김 의원 쪽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김 의원조차도 “결선투표로 가지 않고 1차 투표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친문 주류의 당권 독점에 따른 불만이 커지면서, 당내 다양한 세력의 지지를 받은 이 의원에게 몰표가 나왔습니다.
가끔 혼술(혼술)=간단히 말하면 ‘이해찬-김태년 체제’로 내년 총선을 못 치르겠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표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당 지도부가 친문 주류 일색이 되는 것에 우려가 컸다고 합니다. 지역구에선 “경제가 어렵다” “문재인 정부 일 못한다”는 평가가 심상찮게 나오는데, 청와대나 이해찬 대표와 가까운 김태년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면 여권이 “변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이해찬-김태년 투톱 체제’가 되면 비주류 의원들을 타깃으로 ‘공천 학살’이 자행될 것이란 우려도 이 의원의 예상 밖 압승으로 이어졌단 평가입니다.
정치=이 원내대표가 평소와 다르게 스킨십을 강화하고 염색까지 하는 등 절박하게 경선에 임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달라진 이 원내대표에 대한 동료의원들의 평가는 어땠나요.
혼술=이 원내대표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동료의원들이 한사코 거부해도 밤 10시에도 지방에 직접 내려가는 정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평소 고집 세고 무뚝뚝한 이미지였던 이 원내대표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으니 “사람인지라 마음이 흔들리더라”는 의원들의 이야기가 제법 있었습니다. 반면 김 의원은 “의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전략으로 임했습니다. 무작정 의원들을 찾아가지 않았던 건데, 일각에선 일찌감치 승리를 자신해서 선거운동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것을 패인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정치=이 원내대표 선출로 향후 당청관계나 당내 의사소통 방식에도 변화가 예고됩니다. 정치권에선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요.
탐구생활=그동안 당내 의사소통이 일방통행이라는 문제의식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권파인 김 의원이 당선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비주류 이 의원이 당선된 이유도 청와대나 의원들과의 소통을 수평적으로 가져갈 것이란 기대감이 컸던 거죠. 이 의원은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도 “당정청의 정책 중심을 당 상임위로 가져오겠다”며 청와대에 할말은 하고, 의원들 의견은 폭넓게 수렴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정치=여야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이변이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아요. 당원이나 유권자 대상이 아니라 동료의원들이 뽑는 투표라는 특수성 때문인가요
꺼진불도 다시보자=당원투표와 여론조사가 반영되는 당 대표 선거와 달리 원내대표는 의원들만 투표권이 있기 때문에 예측이 어려워요. ‘누가 더 잘할까’보다는 ‘누가 더 내 말을 잘 들어줄까’가 최우선 기준이에요. 상임위 배정 등 원내대표 권한이 꽤 크니까요. 그래서 후보들은 ‘한 길 속을 모르는’ 의원들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택까지 찾아가 한 표를 호소하기도 해요. 각 후보들이 자기를 찍겠다고 확답한 의원들 숫자를 모두 합하면, 의원정수의 2배가 넘을 정도라고 하니 겉 다르고 속 다른 선거라고 봐야죠.
정치=운동권 출신 상징적 인물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정치인이라는 측면에서 이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잘 어울릴 수 있을까요.
광화문 찍고 여의도(찍고)=이력만 보면 두 사람은 ‘물과 기름’ 같아요. 두 원내대표는 17대 국회 입문 동기지만 상임위 생활을 한번도 같이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사적 인연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9일 첫만남부터 매우 훈훈한 모습을 보여줘서 많은 사람이 놀랐죠. 도도하다는 평가를 듣는 나 원내대표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겠다”고 자처했을 정도니, 냉랭했던 홍영표 원내대표 때보다는 대화가 잘 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나옵니다. 다만 한국당이 ‘좌파 운동권 독재’ 프레임을 들고 나와서 확실한 대여 공격 포인트로 삼고 있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인 이 원내대표와 얼굴 붉힐 일도 적지 않을 것 같네요.
정치=이 원내대표가 강성 이미지와 달리 민생과 소통, 경청을 강조하며 야당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한국당도 장기간 장외투쟁에 따른 부담 때문에 국회에 복귀할 명분을 찾고 있습니다. 여야 정치인들은 꽉 막힌 대치정국을 풀기 위한 해법이나 조건을 무엇으로 보고 있나요.
찍고=바른미래당에서 제안한 ‘개헌 논의 시작’이 꽤 합리적인 해법으로 보입니다. 애초 한국당에서도 선거제도 개편 논의의 전제로 제시한 게 권력구조 개편 등 개헌 논의였고, 이 내용은 지난해 말 작성된 여야 5당 합의문에도 담겼으니까요. 이 원내대표도 여당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이기 때문에 한국당에 개헌 논의를 복귀 명분으로 제시하면 여의도 정치가 다시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마이크=추가경정예산안 처리와 여야정상설협의체가 될 것 같습니다. 9일 이인영ㆍ나경원 원내대표 상견례에서 김정재 한국당 대변인이 이례적으로 발언권을 얻었습니다. 김 대변인은 자신의 지역구인 포항 지진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했는데, 포항 지진대책 예산은 이번 추경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포항이 한국당의 텃밭이란 점을 고려할 때 어떻게든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여야정상설협의체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복원 의지가 아주 강합니다. 9일 KBS 대담에서도 다시 한번 야당에 대화의 자리를 갖자고 요청했을 정도입니다. 다만 여야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 당분간 물밑접촉을 통해 국회 정상화의 조건들을 맞춰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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