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천일야화, 아랍의 고전문학인가 유럽의 창작물인가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된 '알라딘과 요술램프'(사진)는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번역 과정에서 유럽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다. 디즈니 제공

어린 시절 읽어 보았던 해외의 고전 작품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천일야화가 아닐까 싶다. 천일야화는 영어로 ‘아라비안나이트’란 제목이 붙을 정도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아랍의 고전 문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천일야화 이야기 상당수가 18세기 이후 유럽인들이 아랍어 원전에 없는 내용을 보태 넣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천일야화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인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과 마술램프’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천일야화의 실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랍의 무명작가들이 쓴 서민문학, 천일야화 

‘천 하룻밤의 이야기’란 뜻을 지닌 천일야화(千一夜話)는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기원했던 이야기가 아랍어로 번역된 후 바그다드, 시리아, 이집트 등에서 이야기에 살이 붙는 길고 복잡한 여정을 거치며 그 원형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천일야화는 아랍을 대표하는 고전 문학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실제 과거 아랍 세계에서는 정작 그 가치를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무명 작가들이 방언 형태의 아랍어로 쓴 서민 문학에 속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수적인 무슬림 지식인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마술, 귀신, 남녀 간 사랑 이야기가 윤리적으로 건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아랍 세계에서 하층 문학의 하나로 무시당했던 천일야화가 일약 세계적인 문학 작품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것은 프랑스의 오리엔탈리스트였던 앙투안 갈랑(1646~1715) 덕분이었다. 1670년 그는 프랑스 사절단의 통역사로 오스만 제국을 방문하여 약 5년 동안 그곳에 머물며 터키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중동의 언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문학 번역에 관심이 많았던 갈랑은 우연히 ‘뱃사람 신드바드의 7가지 여행’과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천일밤)’라는 두 개의 아랍어 이야기 필사본을 구입했다. 그가 구입한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는 14, 15세기경 작성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일야화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로 천일야화를 유럽에 소개한 앙투안 갈랑

갈랑은 ‘알프 라일라 와 라일라’를 번역한 후 ‘천일야화(Les Mille et une nuits)’란 제목을 붙였다. 원래 이 작품은 1천 하룻밤 동안 지속되는 이야기가 시리즈처럼 계속 진행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구입한 천일야화 아랍어본에는 281일 밤에 걸쳐 진행되는 40개의 이야기만 들어 있었다. 갈랑은 천일야화의 분량이 부족하다고 여겼던지 ‘뱃사람 신드바드의 7가지 여행’ 이야기를 천일야화의 시리즈에 슬쩍 끼워 넣어 합쳤다. 그런 뒤 1704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천일야화 프랑스어 번역 시리즈 7권을 차례로 출판했다.

 ◇끼워 넣고 합친 천일야화, 프랑스에서 공전의 히트 

파리의 시민들은 천일야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유령, 요정, 마술, 하늘을 나는 말, 바그다드의 칼리파, 아름다운 공주 등과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와 이국적 정취에 금세 매료되었다. 천일야화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이에 고무된 출판사가 발 빠르게 후속 편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오리엔탈리스트인 프랑수와 페티 들라크루와로부터 아랍 이야기 몇 편을 입수했는데, 사실 그 이야기들은 천일야화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출판사는 그 이야기들을 갈랑이 갖고 있었던 다른 아랍 이야기와 마음대로 합친 후 천일야화 시리즈 8권을 출간했다.

천일야화가 계속 흥행 몰이에 성공하고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 주자, 출판사는 더 많은 천일야화 시리즈를 만들어 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당시 출판사의 관심은 이야기가 진짜 천일야화에서 온 것인지 또는 위조된 것인지 여부를 따지는 데 있지 않았다. 그 출처가 어디든 또 누가 언제 어디서 지은 것이든 간에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아랍 풍 이야기라면 그만이었다. 출판업자는 갈랑에게 더욱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천일야화의 시리즈를 써달라고 종용했지만, 갈랑은 이미 소재가 고갈된 상태였다.

갈랑이 소장했던 천일야화 아랍어 원본. 그러나 이 원본에는 신드바드, 알리바바, 알라딘의 이야기는 들어있지 않았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바로 그 무렵 갈랑은 한나 디압이라는 정체불명의 아랍인을 만났다. 그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온 마론파 소속의 그리스도교도 아랍인이었는데, 프랑스인들의 사교 모임에 참석하여 아랍의 민담을 들려 주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1709년 갈랑은 친구를 통해 한나 디압을 소개 받았고, 파티에 참석하여 그가 떠든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한나 디압이 갈랑에게 입으로 전해 준 이야기 가운데에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과 ‘알라딘과 마술램프’에 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두 이야기 역시 천일야화와 전혀 무관했지만 갈랑은 후속 시리즈에 넣기로 결심했다. 갈랑은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마음대로 개작하고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맞게 윤문을 가한 후 천일야화 시리즈의 마지막 4권을 더 출간했다. 그 결과 갈랑의 프랑스어판 천일야화 시리즈는 1704년부터 1717년까지 총 12권이 간행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천일야화는 유럽으로 처음 소개되었을 때부터 마음대로 이야기가 편집되고 개작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갈랑의 번역 시리즈 가운데 그나마 아랍어 원본에 근거를 둔 것은 7권까지였고, 나머지 8권부터 12권까지는 천일야화와 전혀 무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더욱 황당한 것은 ‘신드바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알라딘과 마술램프’ 역시 상업적 흥행을 위해 전혀 엉뚱한 출처에서 가져와 삽입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천일야화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영국 탐험가의 손에서 ‘섹슈얼 판타지’로 재탄생 

프랑스에서 시작한 천일야화의 열풍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휩쓸었는데 영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약 한 세기 동안 영어로 번역된 갈랑 판 천일야화가 서민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영국에서는 갈랑이 번역에서 많은 오류를 저질러 작품 전체를 왜곡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바로 그 때 영국의 유명한 탐험가이자 오리엔탈리스트였던 리처드 버턴(1821~1890)이 갈랑의 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영어판 천일야화 번역에 도전했고, 그 결과 1885년부터 1888년까지 16권의 천일야화 시리즈가 완성되었다.

19세기 후반 천일야화를 새롭게 번역한 리처드 버턴. 그는 천일야화를 에로티시즘 문학 작품으로 바꾸었다.

갈랑과 비교할 때 버턴이 번역한 천일야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녀 간의 은밀한 성애(性愛)를 가능한 모든 기교를 동원하여 최대한 에로틱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버턴은 갈랑이 과거 보수적이던 시대 정서에 부합하여 일부러 남녀 간 정사 장면을 삭제하거나 고상한 표현으로 고쳤고, 그 결과 천일야화를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전락시켰다고 불만을 품고 있었다. 버턴은 천일야화를 성인을 위한 작품으로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여기고 외설적인 표현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것을 번역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버턴의 천일야화는 19세기 말 또 다시 유럽 전체를 천일야화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의 번역서를 읽은 유럽인들은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매력적인 하렘의 궁전과 그곳에 사는 벌거벗은 여인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관능적인 에로스의 이야기에 흠뻑 취했다. 또한 그의 번역판에는 당시 유럽의 문학 작품에서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동성 연애, 근친상간, 미소년의 자태 등이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버턴의 노력 덕택에 천일야화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억제된 본능을 일깨우고 섹슈얼 판타지로 가득한 세계로 인도해 주는 성(性)지침서로 재탄생 되었다.

리처드 버턴이 번역 출간한 16권 분량의 영역본 천일야화

이쯤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과연 남의 원작을 마음대로 고쳐 상업용 문화 콘텐츠로 변형시키는 것이 정당할까. 오늘날 수많은 문화 콘텐츠 작품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재탄생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변형 자체가 좋다 또는 나쁘다 잘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 쪽 구석에 뭔가 씁쓸한 느낌은 계속 남는다. 허구를 허구로서 즐기는 것과 허구와 진짜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일야화가 유럽인들에 의해 가공되고 변형된 것도 모른 채 단순히 아랍 고전 문학의 백미라고만 알아 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아랍의 고전 문학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설정한 프레임으로만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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