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26일 치러지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러시아 공작이 먹혀 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등 러시아가 껄끄럽게 여겼던 주요 서방 지도자들이 선거 이후 위축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 인구의 절반가량인 2억 4,000여만명이 러시아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하기 위해 온라인상에 퍼뜨려진 정보에 노출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말 EU집행위원회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 러시아의 선거 개입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엔 여전히 충분치 않은 셈이다.
1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온라인 보안업체인 ‘세이프가드사이버’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선거 공작을 폭로했다. 올해 3월 1~10일 자체 조사를 진행한 결과, 러시아와 연계된 계정을 가진 사이버 공간의 악성 행위자 6,700명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으며 이들의 게시물이 최대 2억4,100만명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EU의 총 인구는 2018년 1월 기준 5억1,260만명에 달한다.
보고서가 전한 러시아발 가짜 뉴스는 거짓 정보가 포함된 이야기를 EU 소속 국가별로, 또는 각 이슈별로 만들어낸 ‘국지적’ 형태였다. 러시아가 표적으로 삼은 특정 정치인을 겨냥한 공격이라는 얘기다. 예컨대 지난 3월 4일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 르네상스 구상’을 발표했을 당시, 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뉴스를 확산시켰다. 이 역할을 수행한 계정의 활동량은 24시간 이내에 79%나 증가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관련해선,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영국 하원이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을 두고 특정 방향의 뉴스 생산을 위해 일부 사실을 왜곡했다. 독일에 대해선 시리아 난민 위기,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급부상 등을 엮어 이민 정책에 대한 국내 분란을 조장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러한 거짓 정보들은 주로 특정 텍스트 문구를 골라내도록 프로그래밍된 자동화 봇(botㆍ로봇 소프트웨어)을 통해 확산됐다. 아울러 악성 봇 탐지 알고리즘을 피해서 복수 계정으로 활동하는 행위자들도 발견됐다. 세이프가드사이버 측은 “러시아와 연결된 게 확실한 트롤 부대(사이버상 여론조작 조직) 및 봇 계정 데이터베이스 50만개 이상을 구축했다”고 보고서에서 설명했다. 이 회사의 공동 설립자인 오타비오 프레이리는 “가짜 뉴스의 급증은 ‘SNS에서의 확산을 멈추기 힘들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부추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악성 행위자는 선거 인프라 해킹이 곧 (유권자들의) 현실과 사실에 대한 인식을 해킹하는 전술이라고 본다”며 “전자는 방화벽을 사용하면 되지만, 후자는 계속 보호할 수 없다. 보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을 막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액션 플랜’을 수립, 가짜 뉴스 대응 예산을 종전 190억유로에서 500억유로로 대폭 늘린 게 대표적이다. 신속한 경보시스템을 도입해 가짜 뉴스를 포착하면 회원국과 EU 기구가 공유토록 했고,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팩트 체크’ 활동도 강화하도록 했다. 줄리언 킹 EU 안보담당 집행위원은 “악성 행위자는 국가(기관)이든, 비(非)국가이든 상관없이 우리의 민주적 절차에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고 간섭하길 꺼리지 않는다”며 “선거의 안전 보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러시아는 “(선거 결과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대비한) EU의 희생양 찾기 전략”이라면서 관련 의혹들을 부인하는 입장이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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