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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코오롱생명과학 이우석(가운데) 대표를 비롯한 '인보사' 관계자들이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임소형 기자

한 소비자 단체가 지난달 30일 제약기업 코오롱생명과학과 식품의약품안전처를 검찰에 고발했다.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를 허가받은 것과 다른 성분으로 만들어 판매한 코오롱,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식약처를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이보다 한달 전인 3월 29일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질자원개발기업 넥스지오와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검찰에 고소했다. 지열발전으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땅 속에 물을 주입한 넥스지오와 이를 방치한 산업부에 대해 역시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인보사와 지열발전 사태는 꼭 닮았다. 긍정적,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걸로 기대를 모은 최신 과학기술이 역으로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냈다. 인보사는 2017년 7월 허가 당시 세계 첫 세포유전자치료제로 생명과학의 쾌거라 평가받았고, 포항지열발전소는 2012년 9월 아시아 첫 지열발전소라는 정부의 대대적인 홍보 속에 첫 삽을 떴다.

그러나 인보사는 2년여 뒤 무허가 성분이 발견돼 생산이 중단됐고, 지열발전은 약 7년 뒤 규모 5.4 지진을 촉발한 원인임이 밝혀져 중단됐다. 제조사와 보건당국을 믿고 신약을 처방 받은 환자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성분을 몸 속에 주입한 셈이니 불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포항이 지열발전의 최적지라는 과학자들과 정부의 판단을 믿었던 포항 시민들은 일상을 덮친 지진으로 막대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시달렸다.

인보사와 포항 지열발전은 결과적으로 불완전한 과학의 산물이다. 인보사 개발 초기의 분석 기술이나 허가 절차로는 성분의 정체를 제대로 확인조차 못했다. 지열발전 연구 착수 당시에는 활성단층 존재를 몰랐고, 대규모 지진 가능성도 저평가했다.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앞만 보고 달렸다. 결과물의 실상이 드러난 뒤에도 연구자들은 “(인보사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해) 더 뭘 검증해야 하느냐”고, “(지진 대비) 매뉴얼까지 만들어 대비했는데, 의도와 달리 너무 큰 일이 났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급기야 윤리 논란까지 불거졌다. 코오롱은 허가 전 인보사 주성분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알려졌는데도 “몰랐다, 확인 중이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열발전 관련 과학자들은 지열발전과 포항지진의 상관관계를 밝힌 논문의 근거가 된 자료 입수 경로를 놓고 연구윤리 위반이다, 무형의 압력이다 맞서며 뒤늦은 폭로전을 벌였다.

과학은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결코 완벽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완전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요 성과물인 연구논문만 봐도 단적으로 나타난다. 과학논문 철회분석 웹사이트 ‘리트랙션 워치’와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따르면 국제학술지에 실렸던 논문이 철회된 건수가 2000년 이전엔 연 100회 미만이었는데, 2014년 이후 1,000회 이상으로 10배 증가했다.

논문 철회 사유의 약 40%는 데이터 오류나 재현 불가다. 데이터 조작, 위조, 표절도 철회 이유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철회 논문 10편 중 8편이 실험 과정이나 결과가 잘못됐든지, 연구윤리에 심각한 문제가 있든지 둘 중 하나라는 얘기다. 부끄럽게도 한국 과학자들의 철회 건수는 논문 1만건 당 6회로 6위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다. 학계에서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힘을 얻기도 전에 불완전한 과학은 사회로 나와 큰 상처를 남겼다.

인보사와 지열발전 사태를 지켜보며 국민들은 설익은 과학연구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 체득했다. 이어진 연구자들의 발언과 태도에서 실망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과학의 마지막 자존심인 도덕성마저 언제 땅에 떨어질지 아슬아슬하다.

임소형 산업부 차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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