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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와 표적] “킬러로봇 개발 의도 없다” AI 강국 일본의 연막작전

입력
2019.05.10 09: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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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한국일보>는 매주 금요일 세계 각국이 보유한 무기를 깊이 있게 살펴 보며 각국이 처한 안보적 위기와 대응책 등 안보 전략을 분석합니다.

러시아가 개발한 무인지상전투차량(UGV) 우란-9. 국방일보
러시아가 개발한 무인지상전투차량(UGV) 우란-9. 국방일보

“일본 정부는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 ‘완전 자율형 무기’를 개발할 의도가 없다”

별안간 일본이 소위 ‘킬러 로봇’으로 불리는 자율형살상무기시스템(LAWSㆍ이하 로스) 개발 금지에 앞장서겠다는 듯한 입장을 내놨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3월 14일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정하는 완전자율형무기 개발에 대한 규범을 만드는 데도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이 같은 발언은 국내 군사ㆍ무기 전문가들 사이에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로봇 강국’이자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군비증강 길을 당분간 멈추기 어려운 일본의 입장과 엇갈리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들은 “로스 개발에서 ‘윤리적 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게 일본 정부 판단”이라며 “로스 규제에 적극 나서며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로스 개발의 윤리적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를 이끌겠다는 뜻이라지만, 일본의 실제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정설이다.

 5년 간의 킬러 로봇 규제 논의 헛바퀴 

인공지능(AI) 기술이 인류에게 혜택을 안겨줄 것이란 기대감이 유독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야가 있다. 바로 무기 개발 분야다. AI 기술이 살상용 무기 체계에 무분별하게 적용될 경우 무기 스스로 적성 인간 전투요원을 식별하고 공격하는 즉 ‘터미네이터’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영화 속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겠으나, 최근 AI 기술 진전 속도를 감안하면 ‘윤리적 판단’이 완전히 배제된 살상 자체를 목표로 한 무기체계 개발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우려다. AI 분야 석학인 스튜어트 러셀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로스 개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동영상을 통해 “ ‘학살 로봇 개발 기술은 이미 실존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 같은 우려에 따라 국제사회도 2014년부터 특정재래식무기금지협약(CCW) 체제 아래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이 문제를 별도로 논의하는 ‘정부ㆍ전문가 그룹’(GGE) 회의를 신설했다. 각국이 동의하는 로스의 ‘범위’를 정하고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국제 규범을 만드는 게 GGE 회의의 목표다.

하지만 5년 간 지속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는 실정이라고 회의 사정을 잘 아는 군 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로스에 대해 관련 기술이 축적된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일본 등 AI 선진국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 주축이 된 비동맹(NAM)그룹이 편이 갈려 대립하고 있다.

양측 간 입장 차는 ‘로스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이냐’에서부터 갈리고 있다. 이미 상당 수준의 로스 개발 기술을 갖춘 서방 측은 AI가 탑재된 무기를 로스로 규정하고, 여기에서부터 군축 논의를 시작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비동맹 그룹은 AI 탑재 무기는 물론 모든 자동화무기체계를 로스 범주 안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무인로봇기술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일본을 포함한 서방은 로스 범위를 좁히려 하고, 개발 수준에서 뒤쳐진 비동맹 그룹 국가들은 규제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는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율형상살무기(LAWS) 규제 관련 쟁점. 한국일보
자율형상살무기(LAWS) 규제 관련 쟁점. 한국일보

 로스 규제 공론화 막으려는 일본의 전략 

비동맹 그룹은 또 로스 개발 규제에 대한 논의를 유엔 차원의 의제로 격상시키자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선진국은 반대 입장이다. 선진국이 반대하는 건 비정부단체(NGO) 등을 중심으로 로스를 ‘학살 로봇’, ‘킬러 로봇’으로 인식하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 간 입장 차이로 관련 논의가 수년 째 답보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의 최근 입장변화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주목 받았다. 군 당국 관계자는 “최근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프랑스와 독일 등이 로스 규제가 필요하다는 관련국들의 컨센서스를 담은 ‘정치적 선언’이라도 서두르자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일본이 여기에 동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로스 규제 신설을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에 가까웠던 일본이 ‘논의를 좀더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의 본심은 따로 있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최고 수준의 로봇기술력을 갖춘 일본으로선 로스 규제 범위를 빨리 확정 짓는 게 규제 범위를 피해 로스 개발에 앞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본 로스 기술력은 미국 중국과 함께 3파전 양상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정보 분석 서비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최근 20년 간 AI 관련 논문 발표 규모를 분석한 결과 중국이 13만 건으로 1위, 미국이 11만 건으로 2위 일본이 4만 건으로 3위로 평가했다. 한국은 1만9000 건으로 세계 11위 수준에 그쳤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의 2017년 분석을 봐도 미국 AI 기술력 대비 한국은 1.8년 가량 뒤쳐지고 있는 반면 일본은 1.4년 차이로 중국과 함께 2위 수준의 기술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기술력이 앞서 있는 만큼 일본 입장에선 구체적 로스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규제 범위가 빨리 수립되는 게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로스 문제를 유엔 등 더 큰 논의의 틀로 확산시키지 않기 위한 고차원적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체적 로스 규제 방안을 확정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 문제를 유엔 등 큰 틀에서 다루자’는 비동맹 그룹 측의 목소리는 힘을 얻게 된다. 현재의 GGE 틀 내에 이 문제를 묶어두기 위해 일단 ‘정치적 선언’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 같은 로봇 기술 선진국들은 GGE 틀 바깥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일본이 최근 GGE 차원의 ‘정치적 선언’에 동조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중국이 세계 최초로 건조해 공개한 수륙양용 무인 보트. 인명 피해 없이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중선중공 웨이보 캡처
중국이 세계 최초로 건조해 공개한 수륙양용 무인 보트. 인명 피해 없이 상륙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중선중공 웨이보 캡처

 AI 기반 무기체계 이미 실전배치 단계 

각국 간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는 동안 AI를 응용한 무기체계는 이미 실전 배치되고 있다. 최근 중국이 공개한 수륙양용 무인 쾌속정이 대표적이다. ‘바다의 도마뱀’(海鬣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쾌속정은 AI기술을 적용해 자율주행은 물론 수중ㆍ수상 장애물을 스스로 피하며 전투할 수 있다. 육지에 접근하면 이를 스스로 인식하고 차체 안에 있던 궤도를 꺼내 상륙한다.

수중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바다 도마뱀’은 수상에서는 시속 50노트(시속 92㎞), 육상에선 시속 20km 속도로 주행할 수 있으며, 기관총 2대와 대함ㆍ대공미사일을 탑재했다. 모든 주행은 자율적으로 판단하지만, 기관총과 미사일 발사는 AI가 아닌 인간의 원격 조종으로 이뤄진다.

러시아가 시가지 전투용으로 개발한 무인지상차량(UGV)인 우란-9도 AI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자율 기동을 하며 30mm 2A72 자동화포와 7.72mm 기관총으로 보병 전력을 엄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지난해 5월 시리아에 시험 배치됐으나 기관총 발사가 되지 않는 등 원거리 제어 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로스 개발ㆍ생산에 국제적 차원의 규제가 시급하다는 AI 전문가들의 지적도 여기서 출발한다. 사이버 공격을 당하거나, AI 프로그램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인간이 의도하지 않은 대량 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적성국이 개발하면 이에 대한 억제력을 갖추기 위한 대응은 뒤따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핵무기를 강대국 몇 나라가 독점하고, 타국에 대해선 제재하고 있는 현실처럼 로스 역시 소수 강대국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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