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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방음벽이 투명해지자 새가 부딪쳤다

입력
2019.05.1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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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 제공
국립생태원 제공

국내 최초의 방음벽은 1982년 올림픽대로변에 설치됐다. 그 전까지는 자동차 소음이 작거나 커도 참았다. 한 번 방음벽이 세워지자 여기저기서 방음벽을 설치해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자동차가 급증하는 시기와 맞물려 방음벽도 늘어났다.

방음벽은 소리를 막았지만, 거리와 건물, 건물과 사람 사이도 막아섰다. 높고 기다란 방음벽은 성벽 같았다. 도시 곳곳에 칸막이가 쳐졌다. 방음벽 주변은 쓰레기가 쌓이고, 가까이 가기 싫어졌다. 건물과 거리 사이에 높은 벽을 세우니 건물은 고립됐다. 밖에서는 방음벽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고,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방음벽으로 인한 도시 단절의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방음벽이 주는 편리함을 버리기 힘들었다.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방음벽을 설치하면 됐다. 괜히 어렵게 소리 자체를 줄이거나 땅의 용도를 바꾸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대부분 ‘미관을 해친다’와 ‘시선을 막는다’였다. 투명방음벽이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투명방음벽 역시 올림픽대로변에 세워졌다. 방음벽 설치로 한강을 볼 수 없게 되자 아파트 주민들이 민원을 넣었고, 그렇다고 자동차 소음을 참을 생각은 없었다. 기존 알루미늄 방음벽에 비해 세 배가 비싼 높이 4미터짜리 투명방음벽이 대안이 됐다. 92년의 일이다. 투명방음벽은 인기가 많아졌다. 기술도 점점 좋아졌다. 초기 투명방음벽은 금세 누렇게 변했지만, 최근의 것은 투명도가 오래 유지됐다. 이음새가 없는 투명방음벽도 가능해졌다.

시원시원한 투명방음벽은 소음은 막아주면서 조망권은 확보해줬고, 답답한 마음도 없애줬고, 왠지 세련돼 보였다. 도시는 좀 더 밝아졌다.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새가 날아와 부딪쳤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도로와 보, 댐으로 동물의 땅길과 물길을 막았다. 하늘길을 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는데, 최근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동물의 길을 막고, 그들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도로와 댐, 투명방음벽, 유리창을 설치하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의 구조물은 점점 야생동물의 삶을 위협하게 됐고, 우리는 뒤늦게 이를 인지했고, 동물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불과 20년 전, 지리산 시암재를 지나는 도로에 우리나라 최초의 생태통로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400여개가 됐다. 강에 설치된 보가 물고기의 이동을 막는다는 지적이 일자, 보 한쪽에 물고기가 이동할 수 있는 어도를 설치했다. 1966년 양양 남대천에 첫 번째 어도가 설치된 이후, 5000여개의 어도가 생겼다.

투명방음벽에 새가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를 막기 위해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인 버드세이버를 붙였다. 2013년 신내IC, 반포IC의 투명방음벽에 자동차 전용도로 투명방음벽으로는 최초로 버드세이버가 부착됐다. 6년 전 일이다. 그리고 새의 충돌을 막기 위해 투명방음벽에, 유리창에 버드세이버가 부착됐다. 버드세이버를 부착한 사람들은 안심했고, 새를 아끼는 사람들은 버드세이버의 부착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시도가 효과적인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는 늘 살펴봐야 한다. 생태통로도, 어도도 무작정 설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물 생태를 잘 살펴 제대로 설치해야 효과가 있다. 버드세이버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조류 충돌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없었다. 다행히 국립생태원은 2017년 11월부터 야생조류 충돌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얼마 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새의 충돌을 막는 방법을 찾아 발표했다. 국립생태원 홈페이지에는 미관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새의 충돌을 막는 방법이 나와 있다. 이제야 올바른 방법을 알았다. 제대로 행동할 차례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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