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美공감대 토대로 지원 추진… 김연철 통일장관 “회의 소집 논의”
‘北 발사체’로 대북 강경론 걸림돌… 김정은도 자력갱생 강조 내부결속
미국과의 공감을 토대로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본격 추진한다. 형편만 놓고 보면 식량난에 허덕이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도 마다할 처지가 아니다. 2ㆍ28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뒤 첨예해진 북미 간 신경전 속에 주고받을 명분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식량 지원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사실 인도적 대북 지원은 북한 비핵화가 불가역적 시점에 진입할 때까지 제재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데 합의한 한미 정부가 지난해부터 대안으로 고려해 온 보상 카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해 12월 방한 때 대북 인도 지원에 영향이 없도록 자국민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지난달 11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직접 “우리는 지금 인도적 문제를 논의 중이고 솔직히 한국이 북한에 식량 등을 지원하는 게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마침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대화의 복원 방안을 부심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게 매우 시의적절하고 긍정적 조치가 될 것”이라는 지지 발언을 이끌어냈다. 제재 틀 내에서 북한의 궤도 이탈을 차단할 방법이 필요한 미측과 남북 교류ㆍ협력을 활성화할 마중물의 확보가 절실한 남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대북 식량 지원 추진이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북한도 위기 타개가 절박해 보인다. 136만톤의 긴급 지원이 필요할 정도로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이 최근 10년 사이 최악 수준이라는 게 3~4월 이뤄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조사 결과인데, 조사가 이뤄진 것도 북한의 부탁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최근 외교 채널로 북한이 식량 지원을 적극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가뭄 피해가 극심한 북한 지역에 물 펌프를 긴급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준비는 신속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이날 처음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방문한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기자들에게 “사무실에 가서 통일부가 어떤 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회의를 소집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방한한 비건 대표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9~10일 서울에서 열릴 한미 워킹그룹 회의 때도 이 현안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4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쏴 올린 뒤 한미 정계에서 비등하고 있는 대북 강경론이 걸림돌이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는 이날 한 일간지 기고에서 “긴급 식량 지원이 들어가지 않으면 핵 미사일로 무장한 북한군이 몇 년 내 무장 해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큰 문제는 북한 체면을 세워주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재 북한은 연일 자력갱생을 내부에 독려 중이다. 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정세 해설은 “제국주의자들의 원조를 받아 자주적 발전과 번영을 이룩한 나라는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때문에 개성 연락사무소 채널로 남북 당국이 협의하되 민간 구호 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이 국제기구 공여 같은 외교적 해법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미국의 자세와 상관없이 민족 정서로부터 인도 지원이 비롯됐다는 논리를 통일부가 구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파주=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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