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도 쌓여가는 카네이션
스승의 날 대목도 ‘옛말’
붉은 색 카네이션은 어버이날의 상징으로 통했다. 불과 5, 6년 전만 해도 어버이날 출근길에 마주치는 시민이나 택시 기사들의 가슴에는 으레 카네이션 한 송이가 자리 잡았지만 이젠 과거의 일이다. 거리에서 가슴에 꽃을 단 이들을 찾기 힘든 시대가 됐다. 한때 상종가를 친 카네이션 꽃바구니의 위세도 예전만 못하다. 감사와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 카네이션이 바짝 시들었다.
어버이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꽃가게 앞에는 다양한 카네이션들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어버이날이 지나면 생명이 다하지만 아직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꽃들이다. 가슴에 다는 한 송이 카네이션부터 가격이 몇 만원에 이르는 화려한 꽃바구니들의 유혹에도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보기 힘들었다. 예년과 비교해 올해 카네이션 매출을 묻자마자 “이걸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느냐”는 퉁명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 장식한 카네이션은 송이만 빼내 다른 꽃바구니 등에 재활용하는 게 가능하다지만 시들어 상품성이 떨어지고 손도 많이 간다. 그래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목을 노리고 도매로 물건을 떼온 이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꽃가게 주인이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안 나간다”고 한숨을 쉬자 근처 다른 가게 주인이 거들었다. “경기침체로 꽃뿐 아니라 장사가 잘 되는 소상공인들이 하나도 없다.” 서울 중구 충무로 진양상가에서 꽃 도매업을 하는 A씨는 “카네이션은 해를 거듭할수록 안 팔린다”고 했다. A씨는 “바구니나 비누로 만든 꽃은 좀 나가는데, 송이로 판매하는 카네이션은 급격히 줄었다”면서 “송이만 잘라 놓은 카네이션이 금방 시드는 것도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아동들이 단체로 방문하는 아파트단지 경로당 등은 사정이 좀 달랐지만 노인들이 많이 몰리는 서울 종로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일대에서는 왼쪽 가슴의 카네이션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 노인은 “자식들이 다 떨어져 사는데, 평일에 출근해야지 언제 와서 꽃을 달아주냐”고 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의 경매시세에 따르면 지난달 25일~이달 8일 카네이션 거래량은 10만5,535속(1속은 20송이), 속당 평균가격은 7,555원이었다. 2016년 같은 기간 거래량(20만351속)에 비해 절반이 날아간 반면, 평균가격은 3년 전 5,546원에서 약 2,000원이 뛰었다.
꽃가게들은 경기침체와 함께 선물의 트렌드가 변했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는 중단했지만 SK텔레콤이 2016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해마다 빅데이터 플랫폼 ‘스마트인사이트’를 통해 분석한 어버이날 인기 선물 1위는 3년 연속 용돈이었다. 서울 종로3가에서 38년째 조그만 꽃가게를 운영 중인 차오성(71ㆍ시인)씨는 “현금을 주고 받는 게 대세니 매년 꽃을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점점 정이 메말라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버이날과 함께 카네이션이 가장 빛났던 스승의 날은 이미 ‘대목 리스트’에서 삭제됐다. 2016년 11월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된 영향이 크다. 서울시내 한 꽃가게 주인은 “지난 2년간 스승의 날을 겪어 보니 이젠 전혀 기대가 없다”고 했다.
글ㆍ사진=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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