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도 베토벤에게 감정적으로 끌리곤 했어요. 처음 베토벤을 연주했을 때부터 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작곡가 베토벤은 32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남겼다. 피아니스트에게 베토벤 전곡 연주는 큰 산을 넘는 도전과 같다. 한 번의 등정도 쉽지 않은 그 산을 50회 넘게 오른 연주자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73). 50여년간 전세계를 돌며 전곡 사이클(연주)을 해 베토벤 연주 발전에 한 획을 그었고, 전곡 앨범을 세 차례나 발매했다. 베토벤 애호가를 지칭하는 ‘베토베니안’을 넘어 ‘살아 있는 베토벤’이라고 부흐빈더를 부르는 이유다. 6년 만에 한국을 찾은 부흐빈더가 광주, 인천을 거쳐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회를 마무리한다.
이메일로 만난 부흐빈더는 자신의 베토벤 연주가 “더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베토벤에 대해 더 연구하고 알아갈수록 제가 자유로워지는 걸 느낍니다. 그 감정이 제 해석에도 변화를 주는 것이겠죠.” 부흐빈더의 건반 컨트롤은 여전히 유려하다. 그가 표현하는 베토벤의 감성에는 ‘꿈결과 폭풍을 오간다’는 말이 딱 맞다.
부흐빈더의 베토벤 연구는 ‘집착’에 가까운 수준이다. 전곡 악보를 39개의 버전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는 “다양한 판본에서 서로 다른 실수들을 발견하는 게 흥미롭다”며 “아직도 새로 나오는 에디션과 아직 연구해 보지 못한 에디션 등을 다양하게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공연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판본으로 연주한다. “베토벤의 정체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부흐빈더는 베토벤을 “음악뿐 아니라 제 인생에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준 예술가”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연주를 완벽하게 준비하려면 평생의 시간도 모자라겠지만, 베토벤은 제 영혼과 몸, 그리고 심장에 살아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부흐빈더는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도이치 그라모폰과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모토로 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작곡가 11명과 함께 새로운 변주곡을 작업해 공연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연주할 때마다 언제나 새롭게 느껴진다”는 그는 한국 관객에게 이렇게 인사했다. “제가 발견한 음악과 해석으로 한국 청중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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