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세상을 떠난 조양호 회장을 대신할 새 총수(동일인)를 내부적으로 결정하지 못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 작업이 미뤄졌다. 조양호 회장 별세 직후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룹의 공식 후계자가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분 상속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삼남매의 ‘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한진그룹이 차기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9일로 예정됐던 ‘2019년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일자를 15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매년 5월1일까지 기업 동일인을 지정하고 부득이한 경우 이를 15일까지 연기할 수 있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ㆍ법인을 말하는데, 동일인이 바뀌면 특수관계인의 범위가 바뀌고 그에 따라 어느 계열사까지 기업 집단에 포함될지가 결정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한진그룹이 기업 동일인 지정과 관련해 내부적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아 이에 대한 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겠다고 지난 3일 공문을 보내왔다”며 “국내 기업 중 그룹 총수를 누구로 할지 정하지 못해 자료 제출을 미룬 건 한진그룹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은 조양호 전 회장이 17.84%를 갖고 있었고, 조원태 회장(2.34%)과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현민 전 전무(2.30%)의 지분 차이는 크지 않다. 다만 공정위는 동일인 지정에 직ㆍ간접 지분율과 함께 주요 투자 결정, 임원 선임 등에 대한 직ㆍ간접 영향력 행사 정도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지난달 24일 한진칼 이사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된 조원태 회장이 자연스럽게 동일인으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동일인 변경 신청서가 제출되지 않으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 정황이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의 복권을 반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 전 회장이 “가족과 협력해 사이 좋게 이끌라”는 유언을 남긴데다 그룹 경영권을 조 회장이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조 전 회장의 지분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두 자매의 협조가 필요하다. 때문에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가 어떤 식으로든 그룹 내 경영 일선에 복귀할 거라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으로 물의를 일으켜 그룹 내 모든 업무에서 배제된 두 자매의 복귀에 조 회장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면서 이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정위는 오는 15일까지 한진그룹이 동일인 지정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직권으로 동일인을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지정자료 제출 요청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게 된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15일까지 한진이 자료를 제출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며 “동일인 직권 지정엔 한진그룹의 삼 남매 모두를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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