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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당’ 찍긴 찍는데... 부패 실업에 심상찮은 남아공 총선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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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당’ 찍긴 찍는데... 부패 실업에 심상찮은 남아공 총선 민심

입력
2019.05.09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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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지자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설치된 총선 투표소 앞에서 지지 유세를 벌이고 있다. 케이프타운=EPA 연합뉴스
8일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지지자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설치된 총선 투표소 앞에서 지지 유세를 벌이고 있다. 케이프타운=EPA 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치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은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게 ‘만델라 당’이라는 후광으로 승리한 마지막 선거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줬다. 최악 실업률과 에이즈 창궐 등 가뜩이나 사회ㆍ경제난 속에서 집권세력의 부패가 끊이지 않으면서 중산층을 중심으로 심각한 민심 이반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만델라 때문에’, ‘대안이 없어서’라는 이유 때문에 ANC가 간신히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기는 하지만, 다음 선거를 기약하기 힘들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날 주요 외신에 따르면 1994년 첫 다인종 민주선거를 치른 이래 25년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현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까지 ANC가 5연속 집권해 왔지만 이번 선거에선 좌파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2014년 흑인들의 압도적 지지로 정권을 쥔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지난해 인도계 재벌 굽타 가문과의 유착 및 부정부패로 쫓겨나면서 견고한 지지층이 와해될 조짐을 보였다. 선거 직전 공개된 최근 여론조사에서 ANC 지지율은 5년 전 총선의 62%에 훨씬 밑도는 49.5%를 기록했다. 50%의 벽조차 무너진 것이다.

남아공총선 여론조사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남아공총선 여론조사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특히 중산층과 젊은 계층의 이반이 심각하다. 이들은 극좌 민족주의 정당인 경제자유전사(EFF)에 호의적인 모습이다. ANC가 상수도와 전기, 주택 등 기본적 인프라 구축에도 실패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산업화가 가장 잘 이뤄진 나라가 남아공이지만 최근 몇 년간 경제 성장은 기대를 밑돌았다. 2013년 이래 경제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한 것이다. 성장 둔화에도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1인당 GDP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실업률도 27%에 달한다.

젊은 층의 민심 이반은 정치 혐오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AFP통신은 현지 여론조사를 인용해 “젊은 층 유권자 중 600만여명이 선거인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체 등록 선거인 수인 2,600만명의 4분의 1에 가까운 수치다. 남아공의 한 정치평론가는 7일 AP통신에 “국민은 누군가가 이 혼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선거의 중심 이슈로 오르내렸던 토지개혁 문제는 심각한 경제 침체 문제 탓에 뒤로 밀렸다. 백인과 흑인 사이 심각한 토지 소유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집권 ANC는 백인 토지를 무상 몰수하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구의 9%를 차지하고 있는 백인이 경작 가능한 토지의 73%를 소유 중인 상황을 바꾸고자 했지만 먼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여론조사 결과로 볼 때 ANC 단독으로 개헌의석(3분의2)을 차지하기 힘든 상황인 만큼 EFF와의 연정 가능성도 점쳐진다. 제1 야당인 민주연대(DA)가 토지 개혁에 미온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DA는 “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방법을 사용해선 안 된다”며 대신 정부가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토지를 국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다만 투표함이 열리기 전 외신들은 남아공 유권자들이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ANC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주정부 보조 주택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 세빌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1994년 ANC가 정권을 잡은 후로 달라진 것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알고 있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는 더 낫다”고 ANC 지지 이유를 밝혔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르면 9일 발표될 예정인데, 남아공 역사상 최다인 48개 정당이 참여해 5년 임기 상원의원 90명과 하원의원 400명을 선출했다. 남아공은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이번 총선이 대선 역할도 하게 된다.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비례대표제 시스템을 택하고 있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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