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왕좌의 게임'

8년여의 대장정 끝에 마침내 마지막 시즌에 다다른 ‘왕좌의 게임’을 보며 ‘자신의 그림자와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발견한다. ‘그림자를 어떻게 수용하는가’라는 문제에서 가장 극명한 대비는 세르세이와 테온을 통해 찾을 수 있다. 세르세이는 세 자녀가 모두 철왕좌를 둘러싼 파워게임에서 희생된 트라우마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복수의 화신이 되어 절대권력을 휘두른다.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더 끔찍한 복수를 기획하고, 타인의 고통을 잔인하게 즐기기까지 한다. 1시즌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미묘하게 서성이던 세르세이가 8시즌에서는 최악의 악역으로 전락했다. 반면 1시즌에서는 최악의 인물이었던 테온이 8시즌에서는 가장 영웅적인 최후를 맞는 모습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테온은 오갈 데 없는 자신을 거둬준 스타크가문의 명예를 빼앗고, 스타크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이 영주가 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민 배덕자였다. 하지만 8시즌에서는 자신이 죽이려던 바로 그 아이, 이제는 예언자 ‘세 눈 까마귀’가 된 브랜을 살려내기 위해, 테온은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알면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적인 ‘밤의 왕’을 향해 질주한다.

한때 테온은 살인마 램지에게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하며 육체적인 남성성을 잃었지만, 그는 걸핏하면 그의 콤플렉스를 놀려대는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도 그 치욕을 꿋꿋이 견뎌내며 ‘끝내 인간다운 삶’을 살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즉 과거의 끔찍한 트라우마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산사를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악당 유론에게 감금당한 누나를 구하기 위해 또 한 번 목숨을 걸었으며, 마침내 브랜을 지켜냄으로써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장하는 예언자를 지켜낸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즉 한 가족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뻔했다는 끔찍한 죄책감, 영원히 남성성을 거세당했다는 참혹한 트라우마로부터 스스로를 구해낸다. 세르세이는 복수심이라는 그림자에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사랑과 열정 같은 아름다운 빛까지도 저당잡히고 말았으며, 테온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만 같은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고 극복하여 마침내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영웅으로의 변신한 것이다.

스스로의 그림자와 화해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깊은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극복한다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에서 가장 지적인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인 난쟁이 티리온이야말로 바로 이 ‘그림자의 챔피언’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기도 전에 스스로를 먼저 적극적으로 놀림감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타인이 그를 더이상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그는 ‘난쟁이 농담’을 할 때조차 당차고도 위엄이 넘치는 표정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티리온은 입으로는 자신이 난쟁이라는 사실을 폄하하지만, 눈으로는 ‘당신은 결코 나를 망가뜨릴 수 없다’는 진실을 말할 줄 안다. 그의 페르소나(타인의 시선에 노출된 인격)는 독설을 내뱉지만, 그의 행동은 늘 따스하고, 올바르고, 용감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그림자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마음의 전사다. 스타크가의 서자라는 출생의 굴레에 갇혀 평생 괴로워하던 스노우가 북부의 왕이 되는 것도, 아버지의 처형장면을 유일하게 목격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소녀 아리아가 가장 용감한 전사가 되어 백귀들의 수장인 ‘밤의 왕’을 처단하는 것도, 자신의 가장 아픈 그림자와 싸워 이긴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눈부신 정신의 승리를 증언한다.

나는 ‘철왕좌를 누가 차지하는가’보다 ‘누가 자신의 그림자와 싸워 가장 멋지게 승리하는가’를 알고 싶다. 그림자에 잡아먹히지 않고, 트라우마에 질식당하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콤플렉스마저 ‘승리의 자산’으로 역전시키는 자만이, 상처로 얼룩진 무의식의 정글에서 자기 자신을 구해낼 수 있다. 먼훗날 ‘왕좌의 게임’을 떠올릴 때 나는 이 파란만장한 대서사시를 ‘마침내 그림자와 싸워 승리한 아름다운 영웅들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싶다. 당신의 인생에서 부디, 당신은 ‘그림자의 챔피언’이 되기를.

정여울 작가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