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페이스북으로 우리 집 거실 사진을 핀란드의 친구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색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금방 “색다르고, 무척 아름답다”는 답이 왔다. 몇 년 전 딸은 한국에 온 디자이너인 끼까와 하리 남매를 만났고, 우리 가족은 그 인연으로 헬싱키에서 그들을 만났다. 핀란드의 건축과 디자인이 아무리 멋져도, 여행의 으뜸은 역시 만남이고, 함께 보낸 시간이다.
까까 어머니 집에 갔다. 칠십이 훌쩍 넘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집에 혼자 산다. 가족이 함께 살던 집, 가축을 키웠던 집, 전기 없는 작은 집, 사우나집이 있는 아주 넓은 곳이다. 곁에는 개울이 흐르고, 멀리 떨어져 보이지도 않는 옆집과는 울타리도 없다. 매일 마당에서 덤블링을 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사우나 후에는 찬 개울에 몸을 담근다. 우리가 만든 해물전과 카레라이스를 맛보고, 자식들의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했다.
현관 앞 바구니에 털양말이 담겨있다. 밤이 길고 추우며 눈이 많은 핀란드에는 꼭 필요하겠지만, 아직도 털실로 양말을 뜨고, 그런 양말을 신는다. 여름인데도 추웠던 터라 우리도 꺼내 신었는데, 오랜 시간 기울였을 정성이 전해져 아무것도 아닌 양말 신는 행위가 특별하게 여겨졌다. 집안 곳곳의 오래된 가구와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보면서,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핀란드 사람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검색창에 이름만 넣으면 뜰만큼, 하리가 유명한 디자이너인 줄은 미처 몰랐다. 헤어지고 나서야 디자인 샵에 걸려있는 그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리를 위해 몇 시간 전부터 사우나집에 불을 피워 놓았던 친절한 사람이며, 거실 밖에서 소시지를 구워 주었던 소탈한 사람이다. 헬싱키에서 세 시간을 운전해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를 만나러 오고, 숲에서 딴 열매로 어머니와 함께 잼을 만드는 따뜻한 사람이다. 변하지 않은 어머니와 집은 그에게 휴식과 위안 같았고, 차가 보이지 않는 한산한 길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은 새로운 영감 같았다.
그들은 사람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시골에서 여름을 보낸다. 의도적으로 자연 속에 들어가 전기도 없는 집에서 지낸다. 장작불로 집을 데우고, 촛불을 켜고,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면서, 그런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과 평화를 얻는다. 우리가 편리를 선택하는 바람에 놓쳐버린 불편 속의 안락을 잊지 않는다.
끼까의 집에도 갔다. 눈앞에서 후다닥 준비한 음식이 너무 단출해서 놀랐는데, 하리가 디자인한 접시에 담고 촛불을 켜니, 식탁이 금세 황홀해졌다. 색도 무늬도 없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는 굴곡만 있는 접시가 단순하나 밋밋하지 않다. 오로지 그 위에 놓인 음식에만 집중하게 한다. ‘치장을 없애고 본질에 충실해야 해. 단순함이 본질이라네’라고 했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생각났다.
식사 후, 딸이 준비해간 한국의 ‘불닭 볶음면’을 내놓았다. 응수라도 하듯, 끼까는 외국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못 먹는 요상한 맛의 핀란드 캔디를 꺼냈다. 갑자기 묘기 대회장이 된 식탁은 구경거리를 보려는 기대로 넘쳤다. K-Pop으로 한국에 관심이 많아진 그의 아들과 딸은 마치 매운 국수 먹기가 한국으로 가는 통과시험인양, “한국에 가려면 이것쯤은 먹어야지”라며 단호하다. 온몸이 더워진 딸은 옷까지 갈아입고 우유를 통째로 들이켰다. 식탁에는 웃음꽃과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온 식구가 주차장까지 배웅을 나왔다. 막 떠나려는데, 그 사이 즉흥적으로 준비한 가족 쇼를 선사한다. 네 식구가 옆으로 나란히 서서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한 손은 허리 위에 놓고, 또 한 손은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손을 흔들며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우하하하” 배웅치고는 기발하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거실을 다시 들여다봤다. 애기장(나즈막하고 앙증스럽게 예쁘다고 하여 ‘버선장’을 달리 이르는 말) 한 쌍이 나란히 놓여있다. 돌아가신 엄마가 안방에 놓고 썼던 것을 나는 거실에 놓았는데, 덕분에 서양가구들 틈에서 우리만의 얼굴이 되었다. 우리 집 거실을 핀란드의 끼까에게 보여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보여주고 나니 소파와 탁자 같은 서양가구만 있는 게 아니라서 다행스럽다.
애기장에 저절로 정이 가는 내 안의 한국정서를 확인한다. 엄마를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서양식 가구가 많아졌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한국가구는 점점 사라지고, 그런 것을 지니고 있는 일도 귀해졌다. 한국 사람의 집에 한국가구 하나쯤 있는 것이 특별해졌다.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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