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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뛰어넘어 더 자유롭게 살게해주는 환각, 그게 문학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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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뛰어넘어 더 자유롭게 살게해주는 환각, 그게 문학이죠”

입력
2019.05.08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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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 김진수 강릉원주대 교수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김진수 교수. 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문학을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의 발현’이라고 정의했다. 오대근기자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인 김진수 교수. 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그는 문학을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의 발현’이라고 정의했다. 오대근기자

제30회 팔봉비평문학상(팔봉비평상) 수상작으로 김진수(57) 강릉원주대 미술학과 겸임교수의 ‘감각인가 환각인가’(사문난적ㆍ2018)가 최종 결정되었을 때, 심사위원들은 “그런데 수상자에 대해 아시는 분?”이라는 질문을 주고 받았다. 김 교수는 문단의 이른바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1990년 소설가 박상륭 평론으로 등단해 2000년 첫 평론집을, 2001년 연구서를 낸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 않았다. 미학적 관점에서 문학을 분석하는 연구를 주로 한 것도 김 교수를 ‘비주류 중의 비주류’의 자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런 올곧은 ‘비주류’의 길은 오히려 평론가로서 김 교수의 ‘개성’을 강화했고, 심사위원들이 수상자 선정 이유로 꼽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게 하는 계기가 됐다.

‘감각인가 환각인가’는 김 교수가 2001년 이후 17년 만인 지난해 써 낸 평론집이다. 6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 교수는 “게을러서 그랬다”고 웃으면서도 “많은 일이 있었던 17년이었다”고 말했다.

 -‘사랑, 그 불가능한 죽음’(2000)과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2001) 이후 ‘감각인가 환각인가’가 나올 때까지 17년이 걸렸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일단 게으름이 제일 컸고요(웃음). 사실 첫 번째 평론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음 평론집은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잘 써야겠다 하다 보니 점점 늦어진 게 이유 중 하나고요. 사실 평론집은 팔리는 책이 아니잖아요. 어차피 안 팔리고 부담만 될 책을 출판사에 가서 내달라고 하기가 부끄럽더라고요. 이번 책은 다행히 서울문화재단의 문학창작집 발간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나왔습니다.

최근 4, 5년 사이에 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가장 존경하며 제2의 아버지로 모셨던 박상륭, 황현산 선생님이 연이어 작고하시면서 마음 고생을 크게 했습니다. 그 분들이 살아 계셨을 때 이런 상 받는 모습을 보여 드렸으면 참 좋았겠다 싶어서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조금 울었습니다.”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 '감각인가 환각인가'(사문난적)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작 '감각인가 환각인가'(사문난적)

 -박상륭 소설가, 황현산 문학평론가와의 인연은 어떻게 닿았나요. 

“박상륭 작가는 제가 1990년에 문예지 ‘문학과사회’에 ‘죽음의 신화적 구조-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발표하며 평론 등단한 뒤 가장 오랫동안 탐구한 세계입니다. 미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시인이 될 꿈을 꾸고 있었는데, 군대에서 그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읽은 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 작품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렬한 마음이 들어 평론으로 등단까지 하게 됐죠. 황현산 선생님은 시 전문 계간지 ‘포에지’를 함께 만들면서 연이 닿았습니다. 함께 잡지를 만들어 보자고 연락을 먼저 주셨죠. ‘문학ㆍ판’의 편집인이었던 이인성 선생님과도 오랜 기간 함께 했고요. 그 분들 사랑 덕분에 글을 열심히 쓸 수 있었습니다. 글이라는 게 막 쓰는 게 아니라 정말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쓸 수 없구나, 그분들로부터 배웠어요.”

 -심사위원 모두가 김 교수님을 두고 ‘낯선 인물’이라고 했어요. 문단 주류와 연이 없으셨나 봐요. 

“일단 제 성향 자체가 외골수이기도 하고, 관심을 갖는 시인의 폭도 무척 좁아요. 마침 올해가 등단한 지 30년인데 관심을 두는 작가는 여전히 소수입니다. 그만큼 깊게 파지요. ‘죽음의 한 연구’는 책이 닳도록 수십 번 읽었고, 시에서는 오규원 시인의 세계를 탐닉했습니다. 제가 작품 경향 자체도 주류가 아닌 데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술자리가 아니면 말도 잘 못합니다. 지금도 말을 하는데 무척 떨리네요.”

 -수상작에서 ‘감각’과 ‘환각’이라는 맥락에서 시와 소설을 읽어냅니다. 왜 ‘감각’과 ‘환각’인가요. 

“문학의 역할은 일상의 감각 마비를 방어해주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시각, 청각 같은 우리의 감각은 한계를 갖고 있잖아요. 다행히 인간은 오감의 한계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이라는 무기를 갖고 감각을 끊임없이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 상상력을 가장 폭넓게 사용하는 것이 문학이겠죠. 감각의 영역을 넘나드는, ‘환(幻)’의 감각이 결국 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환각에 덧입혀진 부정적 이미지가 있지만, 저는 환각이야말로 육신의 감각을 뛰어넘고 더 넓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 주는 본질이라고 봅니다. 그게 바로 문학이고요.”

 -심사위원들이 ‘비평가로서 자신만의 문장 스타일과 비평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치열함’을 공통적으로 수상작 선정 이유로 꼽았는데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나요. 

“스타일이 드러나지 않으면 논문이나 웅변이지, 비평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학, 그중에서도 시는 아주 섬세한 세계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눈, 자신만의 개성으로 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등단할 때부터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줄곧 해 왔습니다. 지금도 글을 쓴 뒤에 열 번 이상 읽어보며 호흡을 조절하고 문장으로 정확히 전달되는지 다시 봐요. 읽다가 하나라도 걸리면 다시 들여다보고 가급적 잘 읽히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김진수 교수가 6일 한국일보에서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 김진수 교수가 6일 한국일보에서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문학평론가가 되셨어요. 현재는 대학 미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죠. 문학 바깥에서 문학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가요. 

“미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분명 문학 비평에서 할 일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일반 문학 전공자라면 다루기 어려운 것들도 미학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면 다르게 보이거든요. 문예미학적 관점에서 왜 이런 소설이, 이런 시가 등장했는지를 짚으면 독자들 입장에서도 문학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포에지’ 편집위원과 계간 ‘문학ㆍ판’의 주간을 역임하는 등 잡지 일도 꾸준히 하셨는데요, 최근 잇달아 문학잡지들이 폐간되고 비평의 설 자리도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문학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없어진 결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다른 미디어, 특히 영상미디어라는 다채롭고도 사람을 매혹하는 세계가 그 역할을 많이 가지고 갔어요. 하지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세계보다 ‘읽는다’는 적극적인 행위를 기반으로 하는 문자 세계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봐요. 폐간도 많이 됐지만 최근 ‘쓺’과 같은 잡지가 등장하는 걸 보면 그런 문학의 역할을 아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거겠죠. 수요는 물론 줄겠죠. 하지만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책의 서두에 문학을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썼습니다. 문학이란, 비평이란 무엇인가요. 

“지금도 끊임없이 생각하지만,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싶어요. 애정이 없으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깊게 들여다보지 않고, 그만큼 넓게 볼 수 없죠. 세계와 사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감각을 확장시키려는 노력은 사랑에 근거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너무나 평범한 얘기지만 달리 문학을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사랑이랄 밖에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김진수 교수는 △1962년 강원 삼척 출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 동대학원 철학과 박사 △1990년 ‘문학과사회’에 ‘죽음의 신화적 구조-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로 등단 △평론집 ‘사랑, 그 불가능한 죽음’ ‘우리는 왜 지금 낭만주의를 이야기하는가’ 번역서 ’미학사전’ △계간 시전문지 ‘포에지’ 편집위원, 계간 ‘문학ㆍ판’ 주간 △현 강릉원주대 미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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