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줏값만 오르나” 논란에 정부 발표 연기… “인상 불가피하면 국민 설득해야” 지적 나와
정부가 최근 “소줏값만 오르는 것 아니냐”는 등의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주류세 개편안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주류 출고가에 세금을 매기는 기존 ‘종가세(從價稅)’ 대신, 술의 용량이나 알코올 농도를 기준으로 삼는 ‘종량세(從量稅)’로 바꾸자는 방향에 주류업계 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한 탓이다.
정부는 “다양한 측면을 세밀히 짚어봐야 하기에 개편안이 다소 늦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논란을 의식해 결론을 미루는 모양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정부는 주류세 개편이 아예 취소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 답하기 곤란하다”며 개편 철회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50년만에 주류세 개편이라고 강조했던 정부가 이견을 보이는 난제에는 납작 엎드리는 ‘결정 장애’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류세 개편, 추가 검토 필요”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애초 정부가 4월 말이나 5월초 발표를 목표로 삼아, 주류세 개편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었지만 현재 지연되고 있음을 말씀 드린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주종 간, 동일 주종 업계 간 종량세 전환에 이견이 일부 있어 조율과 실무 검토에 추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마무리되는 대로 개편안을 발표할 것이며 구체적인 시기는 별도로 공지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국민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술과 관련한 주류세 개편은 50여년 간 유지된 종가세 체계를 개편하는 작업”이라며 “소비자 후생, 주류산업 경쟁력, 통상 문제 등 다양한 측면을 세밀히 짚어봐야 하기에 개편안이 다소 늦어지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부연했다.
정부는 그간 술에 매기는 세금을 기존 종가세 대신 종량세로 바꾸는 안을 검토해 왔다. 현행 과세체계 하에서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은 수입맥주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산맥주가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종량세 도입 시 ‘서민의 술’ 소주에 붙는 세금이 높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현재는 비싼 술에 높은 세금을 매기고 저가 술에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지만, 종량세로 바뀌면 알코올 도수나 주류의 양에 따라 세금이 부과된다. 특히 알코올 도수에 따라 세금이 매겨질 경우 낮은 도수인 맥주는 가격 경쟁력이 커지지만 도수가 높은 소주는 가격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 실장도 “맥주 업계는 대체로 종량세 개편에 찬성하지만 일부 이견이 있다”며 “소주ㆍ약주ㆍ청주ㆍ증류주ㆍ과실주 등 업계에서는 종량세로 바뀌면 제조ㆍ유통ㆍ판매구조 등에서 급격한 변화가 오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소주ㆍ맥주 가격 그대로” 원칙에 스스로 발목
정부는 주류세를 개편하더라도 ‘지금의 소주와 맥주 가격은 변동이 없게 하겠다’는 전제는 유효하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업계와 조율할 부분이 있지만 가격 변동이 없다는 기본 원칙은 계속 견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로선 모두를 만족시키는 묘안을 찾겠다는 얘기지만, 오히려 이런 이상론 때문에 주류세 개편 자체가 꼬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서민 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소줏값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런 원칙 자체가 종량세 체계 도입에 부합하기 어렵고 개편이 어려워 지는 것”이라며 “주세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지 비난 여론만 피하려는 자세로 일관하면 제대로 된 주세 개편은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담뱃세처럼 대폭이 아닌 합리적 수준의 인상이라면 사회적 논의를 통해 주류세 인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면서 주류세 개편 시도 자체가 취소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실제 김 실장은 ‘주류세 개편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대한 개편안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취소와 관련해) 말씀 드리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정부가 주류세 개편 취소 여지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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