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鬱陵島)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신라 때부터 우산국 또는 울릉도로 불리었다. ‘수풀이 우거진 언덕의 섬’이라는 이름에서 풀어볼 수 있듯이, 최근 연구에 의하면 울릉도에서 자라는 약 500종의 식물 중에서 상당수가 울릉도 외의 어떠한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한 식물종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새로운 종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진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울릉도는 약 200만년 전에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되어 현재 육지로부터 약 1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섬 형성 이후에 빙하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도 수심이 깊은 동해로 인하여 육지와는 한 번도 연결되지 않은 까닭에 울릉도에 자리잡은 식물들은 격리 이후에 육지의 자매종과는 자연적 교잡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울릉도의 독특한 환경에 독자적으로 적응한 식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울릉도 고유식물인 섬나무딸기는 육지의 자매종인 산딸기와는 달리 줄기에 가시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산딸기가 화산섬에 정착한 후에 천적인 초식동물들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항하는 무기인 가시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울릉도는 생성 이후 육지와는 연결된 적이 없는 화산 대양섬으로 200만년의 나이는 진화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종분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식물 진화의 자연실험실로서의 중요한 과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세계적인 식물계통학자인 비엔나대학의 스튜시 교수는 국내 과학자와의 공동연구에서 육지식물에 대응되는 울릉도의 고유식물로 직접 진화가 일어난 사례가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적으로 발표하여 울릉도의 식물 진화 자연실험실로서의 중요성을 입증하였다.
세계자연유산이란 유네스코 유산위원회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자연물을 대상으로 지정하는 하는 것으로 세계문화유산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으나, 세계자연유산의 등재과정은 훨씬 까다롭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209개소가,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자연유산으로서는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일하게 등재되어 있다. 세계자연유산의 등재의 가장 근본적인 척도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뛰어난 가치’를 지녀야 하며, ‘생물 진화의 주요한 과정을 입증하는 사례’가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울릉도는 바로 이 생물 진화의 자연실험실로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학술적 가치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울릉도는 지난 2002년 국립공원의 지정을 시도하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아픔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보호지역의 지정이 개발 억제를 위한 절대 보존의 테두리에서 과도한 규제의 틀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주민들의 반대는 당연한 결과일 수 있으나, ‘지속 가능한 이용’을 바탕으로 하는 환경 보전의 새로운 인식에서 자연 환경의 가치를 활용하고자 하는 방안이 새롭게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세계적인 보호지역의 범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세계자연유산의 추진을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과제로 발전시킬 수는 없을까? 세계자연유산으로 울릉도 자연의 세계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지역주민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이를 토대로 울릉도 자연의 보전에 대한 새로운 기틀이 마련되며, 새로운 차원의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재창출하게 된다면, 세계자연유산의 등재는 울릉도의 자연을 세계적인 값진 유산으로 우리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서영배 서울대 교수ㆍ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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