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K리그 서포터 허관ㆍ우창호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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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 허관(맨 왼쪽)씨와 그의 아내 조순분(왼쪽 두번째)씨가 지난달 1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2019 인천과 울산의 경기에서 인천이 공격 기회를 잡자 박수치고 있다. 인천=고영권 기자

인천 계양구에 사는 허관(64)씨는 프로축구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아내 조순분(62)씨와 축구 유니폼을 맞춰 입고 집에서 약 30분 거리인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향한다. 나들이를 겸해 찾는 경기장에서 아들 또래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응원하고, 다양한 연령대 관중들과 소통하는 재미가 크기 때문이다. 2010년 처음 인천 홈경기를 찾아 축구에 매료돼 서포터(supporterㆍ지지자) 활동을 시작한 허씨 부부는 올해로 10년 가까이 거의 모든 홈 경기를 찾아 인천을 응원했다. 허씨는 “축구를 꾸준히 지켜보니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고, 선수들의 도전을 지켜보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을 거란 용기를 얻었다”며 차근히 축구의 매력을 나열했다.

최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만난 그는 “인천 서포터가 된 뒤 축구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오랜 시간 도전을 거듭해온 사업을 접으며 실의에 빠졌을 때 찾게 된 경기장에서 매 경기를 차근히 되짚으며 깨달음을 얻곤 했다. 요즘은 축구로 공감대를 이루며 자녀들과 소통이 쉬워졌고, 젊은 이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세대 격차도 줄일 수 있다는 게 그가 꼽은 K리그 서포터 활동의 장점이다. 그는 “한 경기를 보는데 1만원(1인 기준) 안팎인데, 연간회원권으론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 최고 축구리그를 즐기면서, 소속감을 갖고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어 웬만한 여가생활에 비해 가성비가 높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 경기장을 오가고, 간식이나 음료도 반입이 돼 경기장에서 소비하는 비용 또한 줄이자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 허관(오른쪽부터)씨와 그의 아들 허준, 며느리 반예슬씨, 아내 조순분씨가 지난달 1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2019 인천과 울산의 경기에 앞서 경기장 내 기념촬영 장소에서 선수들을 배경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인천=고영권 기자

허씨는 불과 10여년 전 만 해도 시계 제조업계서 제법 알아주던 사업가였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34세 때 회사를 그만둔 직후 사업에 뛰어들어 50대 초반까진 승승장구 했다는 그는 “운영하던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어도 알짜 운영으로 정부기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표창을 받기도 했다”면서도 “2000년대 중반 휴대폰 관련 사업에 손을 대고부턴 사업이 크게 기울어 결국 몇 년 전 사업을 접었다”고 되짚었다. ‘인생 전반전’에 거침없이 골을 집어넣으며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건 사업 규모를 줄이던 2010년쯤부터다. 휴대폰과 관련한 사업영역 대부분에 손을 뻗은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세를 방어하지 못한 허씨는 몹시 방황했고, 설상가상으로 이 때까지 그를 든든히 조력하던 아내 조씨마저 우울증세를 얻었다.

세상에 대한 원망, 사업 실패에 따른 허망함,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에 사로잡혀 살던 허씨 부부가 우연한 계기로 축구장에 발을 들인 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허씨는 “영등포공고 동문인 허정무(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씨가 2010년 8월 인천 감독으로 부임했단 소식에 응원차 K리그 당시 인천 홈 구장이던 문학경기장을 찾았는데, 부족한 예산 탓에 이렇다 할 스타선수 하나 갖추지 못한 인천 선수들이 죽도록 뛰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축구장이)늙은 내게도 많은 배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과거 삼성 라이온즈 광팬으로 스포츠에 관심 많던 아내가 축구 경기에 집중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꾸준히 축구장을 찾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남편 손에 이끌려 축구장에 발을 들인 지 10년째에 접어든 아내 조씨는 이제 남편보다 더 열렬한 팬이 됐다. 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천 축구의 ‘생존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최근 수년간 시즌 내내 하위권 맴돌던 팀이 2부 리그 강등 위기 때마다 전력 이상의 능력치를 끌어내 야무지게 승점을 쌓아 1부 리그에 잔류하는 게 참 신기하단다. 조씨는 “인천은 쉽게 말해 ‘흙수저’ 팀이라 애초부터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순 없지만, 선수들이 모든 걸 쏟아내는 경기를 펼치면 승패와 상관 없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며 “이젠 인천의 모든 선수들이 내 아들 같아서 승부가 어느 정도 패배로 기울면 다치지 않고 경기를 끝내길 빈다”고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 허관(맨 왼쪽)씨와 그의 아내 조순분(왼쪽 두번째)씨가 지난달 1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2019 인천과 울산의 경기에서 인천이 공격 기회를 놓치자 아쉬워하고 있다. 인천=고영권 기자

무엇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두 사람이 최근 수년 새 축구장에서 얻은 새로운 재미는 ‘세대간 소통’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응원가를 목 놓아 부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하다 보니 20~30대 젊은 동료 서포터들도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몇 년 전부턴 아들 내외도 함께 응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물론 대화 소재도 늘었단다. 허씨는 “성장해 온 배경이 다르기에 시각 차가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정치ㆍ사회적 화제 대신, 함께 지켜본 경기와 팀 전력 등을 논하는 게 훨씬 즐겁다”고 했다. 조씨는 “요즘 축구팀에서도 ‘자율’이 강조되듯 가정에서도 구성원이 서로의 뜻을 존중한다면 갈등 생길 일도 없고 스스로 성장하게 된다”고 거들었다. 그는 “자녀들은 부모의 입을 보고 크는 게 아니라, 뒷모습을 보며 성장하는 것”이라며 ”부모 역할은 그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인간의 삶은 90분짜리 축구경기와 사뭇 닮았다. 전력이 다소 처지더라도 전략을 잘 짜 민첩하게 움직여 강자를 이기는 경기, 초반 실점으로 불리해 지더라도 후반전 대비를 잘 해 승부를 뒤집은 경기, 화려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하거나 승리를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 한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경기를 인생에 대입했을 때 그렇다. 허씨는 “내가 죽을 때쯤, 주변에서 내 인생을 지켜본 이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쳐 줄 수 있도록 남은 인생도 최선을 다해 살겠다”고 했다. 그는 “축구장에서 얻은 용기, 젊은이들과 교감하며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더 늦기 전에 소규모 창업에 도전해볼 것”이라고 했다.

올해 칠순을 맞은 우창호씨가 아들 우승환씨 등 가족들과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김형준 기자

K리그 매력에 푹 빠져 지내는 또 다른 백발의 골수팬 우창호(70)씨가 꼽는 K리그 관전 매력 또한 허씨 가족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수원 삼성이 창단하던 1996년부터 서포터 활동을 시작해 20여년 간 수원 서포터 활동을 해 온 그는 아들에 이어 손주들까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고 있다. 그는 최근 아이들 얘기에 귀를 더 기울일 줄 아는 어른으로 새삼 거듭났다고 한다.

어린이날인 5일 아들 승환(42)씨를 비롯해 손주 동윤(12)군, 서윤(5)양과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우씨는 “자주 찾는 경기라지만 K리그 대표 라이벌전인 수원과 서울의 ‘슈퍼매치’가 열린 날이라 더 많은 걸 기록하고 싶다”며 가족사진 촬영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그는 “처음 수원을 응원했을 땐 팀의 골과 승리에 열광했지만, 이젠 가족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전국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는 데서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주말 원정 경기 때마다 울산, 포항, 인천 등을 다니며 남긴 추억은 자신의 소중한 재산이자 가장 큰 자랑거리다.

인천과 달리 수원은 소위 ‘금수저’ 구단이었다. 창단 때부터 줄곧 삼성전자의 전폭적 지원 아래 국내 선수는 물론 외국인 선수도 최정상급 기량의 선수를 끌어 모아 2000년대 초반까진 언제나 우승후보로 군림했다. 하지만 차츰 기업의 지원이 줄고 구단도 자생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하면서 몸값이 비싼 주축 선수들이 해외 또는 국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 자연히 팀 성적은 떨어지면서 ‘이기는 재미’도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이 과정 또한 피할 순 없단 게 우씨 얘기다. 제아무리 금수저라 한들, 스스로 일어설 줄 모르면 대를 이어가며 흥청망청 모은 돈만 까먹다 결국 언젠간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수년 사이 권창훈(25ㆍ디종), 전세진(20ㆍ수원) 같은 수원 산하 유스팀인 매탄고 출신 선수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우씨는 ”수원 형편이 지금 당장은 힘들다지만 탄탄한 유스 시스템 아래서 구단의 주축 선수들을 키워 낸다면 언젠간 과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해본다”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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