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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천동설을 이기는 방법

입력
2019.05.08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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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사회원로 오찬간담회’ 에서 정치적 해법을 요구하는 적폐수사와 관련해 “국정농단ㆍ사법농단 의혹이 사실이라면 헌법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정치적 타협을 하지는 않겠단 뜻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사회원로 오찬간담회’ 에서 정치적 해법을 요구하는 적폐수사와 관련해 “국정농단ㆍ사법농단 의혹이 사실이라면 헌법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라며 정치적 타협을 하지는 않겠단 뜻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 또는 태양중심설을 인류의 절대다수가 믿기 시작한 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봤을 때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 또는 지구중심설이 오랜 세월 사랑을 받은 이유는 너무나 직관적이고 일상 경험에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우리는 해가 뜬다고 하지 지구가 동쪽으로 조금 더 돌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서구의 근대과학을 태동시킨 이른바 과학혁명의 시작을 대개는 코페르니쿠스가 ‘천구회전에 관하여’를 발표한 1543년으로 잡는다. 과학혁명이 위대했던 이유는 아주 오래된 우리의 직관과 경험을 이성적으로 극복하고 자연의 진실에 눈을 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우주가 무한하며 태양은 무한한 우주 속의 평범한 별에 불과하다는 무한우주론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광장에서 화형 당했다. 1600년의 일이다. 이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뒤인 1633년 갈릴레오 또한 종교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 되었다. 그 전해에 ‘두 체계의 대화’라는 책을 출판해 코페르니쿠스를 더 이상 가르치거나 옹호하지 말라는 1616년의 교황 명령을 어겼다는 게 이유였다. 갈릴레오가 죽은 뒤에도 ‘천구회전에 관하여’와 ‘두 체계의 대화’는 교회의 검열 없이는 출판되지 못했다. 모든 검열이 폐지된 것은 19세기였다. 물론 갈릴레오 이후로도 과학자들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수많은 증거를 계속해서 발견했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의 사람들이 지동설을 한 순간에 받아들이는 극적인 사건 같은 것은 없었다. 지동설이 주류가 된 것은 천동설을 믿던 사람들이 모두 나이 들어 죽고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그럴 듯하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을 돌아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천동설이 스스로를 방어했던 방법도, 지동설이 대세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어떤 형태로든 ‘인적 청산’을 동반했다는 점이다. 브루노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청산됐다. 갈릴레오의 경우는 브루노만큼 확실하진 않았다. 지동설을 신봉했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청산하는 대신 과학적인 증거를 수집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 지동설의 편에서 인적청산을 해 준 것은 세월이었다. 더디기는 해도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만약 과학자들이 새로운 증거를 수집하고 탄탄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 게을렀다면 수백 년 전의 신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지동설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며 야만적인 인적 청산을 감행했던 불행한 역사를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그랬다. 한국 현대사도 만만치 않다. 무려 3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제주 4ㆍ3 사건은 이승만이 자기 권력을 다지기 위해 벌인 자기 나름의 인적 청산이었다. 흔히 우리는 해방 이후 인적 청산을 제대로 못했다고 말하지만, 친일파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들은 아주 확실하게 독립지사와 민족주의자들을 청산했다. 이 과정에서 “빨갱이”는 대단히 유력한 수단이었다. 유래를 찾기 힘든 박정희 시절의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은 브루노를 화형에 처한 벨라르미누스 추기경도 울고 갈 지경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년 반 동안 55차례 가택연금을 당했다. 갈릴레오가 살던 300년 전이 아니라 불과 30여 년 전 전두환 시절의 일이다. 전두환은 아예 총칼로 광주를 도륙했다. 빨갱이를 때려잡자는 그들만의 인적 청산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툭하면 북한 배후설이 나오는 게 우연이 아니다. 이 연원의 끝에 모여 있는 자들이 한국사의 누적된 폐단, 즉 적폐의 본류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설마 사람을 때려잡는 식의 인적 청산이 있을 수 있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촛불혁명 시기에 군과 청와대에서 군대를 동원한 친위 쿠데타를 획책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폐를 청산하지 않으면 적폐가 국민을 청산한다. 그게 우리 역사였다. 적폐청산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그런 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적폐들의 방식대로 때려잡기식 적폐청산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월이 자연스럽게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말 그대로 하세월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똑똑한 국민들은 아주 문명화된 방법을 알고 있다. 최근에는 특정정당을 해산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80만 명 가까운 청원이 몰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 청원이야 아무런 법적 강제력도 없긴 하지만, 자신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 정치집단에 국민이 보내는 엄중한 경고로 충분하다. 내년에는 총선이 있다. 그나마 합법적이고 우아하게 청산할 수 있는 기회이다. 다만 유효기간이 4년밖에 되지 않는데다 선출되지 않는 적폐는 이런 식으로 청산할 수가 없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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