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 독립전쟁 중 든든한 지원… 술탄 지배하 자치 허용 ‘특별 주’로
일본 패망 이틀 뒤인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의 국부 수카르노는 독립을 선언했다. 함께 독립에 애쓴 족자카르타(족자) 왕국의 술탄 하멩쿠부워노 9세(현 왕의 부친)가 가장 먼저 호응했다. 공화국을 인정할 테니 족자의 자치권을 보장해달라는 편지도 수카르노에게 보냈다. 족자 북쪽 수라카르타 왕국 역시 같은 요구를 했다. 든든한 지원이 절실했던 수카르노는 즉각 허락했다. 이후 4년간 이어진 네덜란드 및 연합군과의 독립전쟁 중 족자는 공화국의 임시 수도이자 결사 항쟁의 격전지였다.
1950년에야 수카르노는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수라카르타는 왕국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의 반대로 자치권을 반납하고 결국 중부자바주(州)에 흡수됐다. 반면 족자는 주민들의 지지로 술탄의 지배하에 자치가 허용되는 특별 주가 됐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한 ‘공화국 속 왕국’이 탄생한 것이다.
위기도 있었다. 인도네시아 첫 국민직선제 대통령 유도요노(2004~2014년) 전 대통령은 술탄의 세습 관행을 끊기 위해 족자 주지사 직선제 법안을 국회에 넘겼다. 오랜 논란 끝에 인도네시아 국회는 2012년 족자의 술탄 세습을 합법화하는 대신, 4년마다 중앙정부가 술탄을 주지사로 임명하는 방식으로 매듭을 지었다.
수많은 왕조가 명멸했던 인도네시아엔 현재 30여개의 왕가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땅과 재산은 있지만 모두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오직 족자 왕국만이 1755년 개국 이래 지금까지 10명의 왕이 주민들을 실질 지배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나라 속 왕국’이지만, 족자 왕은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일본 등과 달리 이슬람 왕국 브루나이의 10배 인구(400만명)를 직접 다스리고 있다. 면적은 제주의 약 두 배인 3,185㎢다.
족자는 1991년 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세계 8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보로부두르 사원(불교)과 프람바난 사원(힌두교)이 있는 자바 문화의 중심이자 관광 명소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등을 배출한, 술탄의 영지 위에 세운 인도네시아 첫 국립대 가자마다대학이 있는 교육 1번지다. 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다. 욕야카르타가 정식 명칭이지만 공주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은 ‘족자’라 부른다.
족자 주민 대부분은 왕을 인정하고 존경한다. 열에 예닐곱은 “원래 그래서” “족자의 전통”이라고 답했고, 더러 “부정부패가 없다” 딸만 다섯인데 왕은 후사를 위해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실망시키지 않았다”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게 여러 사람의 전언이다.
족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