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감원장 취임 1주년 평가는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지난 2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가정의 달을 맞아 깜짝 사내방송 디제이(DJ)로 나섰다. 그는 임직원 가정의 행복을 빈 뒤 김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방탄소년단의 가요 ‘봄날’을 선곡했다. 작년 5월 취임한 윤 원장에게도 봄은 의미 있는 계절이다. 8일로 그는 취임 1주년을 맞는다.
1년 전 윤 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이 단지 행정의 마무리 수단이 돼선 곤란하다”며 “환영 받기 힘든 일이지만, 법과 원칙에 따라 시의적절히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금감원 본연의 역할인 감독과 견제에 충실하겠다는 의미였다. 실제 그런 운영철학은 지난 1년간 정부와 금융권, 정치권으로부터 ‘3각’ 견제를 받으며 크고 작은 갈등을 빚었다. 그럼에도 소비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가치에서만큼은 타협 없이 버텨 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윤 원장 부임 후 금감원의 금융소비자 보호 태도가 전보다 두터워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 즉시연금 사태에서 금감원이 소비자 편에 서 대형 보험사와의 맞대결을 주도하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국으로선 이례적으로 개별 가입자의 소송을 지원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세인 소비자를 돕고 있다.
이런 방침은 국회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금융당국이 과도한 개입을 한다”며 비판의 빌미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전임 원장들과 달리 강력한 의지를 갖고 소비자를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진심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보험업계 한 고위 임원은 “특히 보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금융에 대한 이해가 깊으니 앞으론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등 금융업이 직면한 큰 변화에 더 신경을 쓰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4년 만에 종합검사가 부활한 것을 두고도 금융사들은 “영업에 지장이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정 회사에 대한 보복성 검사 우려까지 제기되자 금융위원회가 종합검사 기준을 두고 까다로운 점검을 하면서 금감원이 진땀을 빼기도 했다. 비우호적인 여론에도 윤 원장은 금융사의 평상시 내부통제 강화를 유도하는 ‘유인부합적 종합검사’를 도입했다.
윤 원장의 남은 임기는 금감원 감독권한을 쥔 금융위와 관계에 따라 다양한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지난 연말 예산배정 문제를 비롯해 여러 현안에서 금융위와 이견을 보이며 불협화음을 빚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윤 원장의 관심사 중 하나였던 노동이사제에는 금융위의 반대 입장에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했다. 금감원의 오랜 숙원이었던 특별사법경찰 운영도 금융위의 반대로 최근에서야 물꼬를 트는 모양새다. 이런 역학구도 탓에 일각에선 윤 원장의 학자 시절 지론이었던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을 포함해 재임 기간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는 점을 한계로 지목하기도 한다.
1년 전 개혁 성향의 30년 학자 출신이 금감원장으로 오자 금융권에선 “호랑이가 왔다”며 경계감을 표하면서도 한편으론 실무 경험이 없는 점을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숱한 민감한 결정 사안들이 “결코 쉽지 않다”면서 “부족하지만 최대한 상식에 기반해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는 금융권 안팎에서 지난 1년의 윤 원장을 ‘합리적 원칙주의자’로 평가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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