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신청사 개청을 기념해 설치된 박근혜 ‘대통령 친필 휘호 표지석’이 또다시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이달 초 한 시민의 ‘표지석 훼손 사건’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춘희 세종시장이 철거 여부를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자유한국당 세종시당이 원상복구와 엄중한 책임을 요구하며 맞서는 등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조짐이다.
5일 세종경찰서 및 세종시에 따르면 지난 1일 세종시민 김모씨가 표지석에 빨간색 페인트를 뿌리고 철거를 촉구했다.
김씨는 당시 주변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촛불혁명으로 국민들에게 탄핵당해 쫓겨난 박근혜 대통령의 친필 표지석을 세종시의 상징처럼 당당하게 세워두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시는 경찰에 김씨를 고발했다. 경찰은 천으로 가려 사건 현장을 보존했으며, 김씨를 소환 조사한 뒤 재물손괴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표지석 철거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2016년부터 탄핵 결정 이후인 2017년까지 시민단체 등이 표지석 철거를 요구했다.
세종참여연대는 당시 “민주주의와 헌법을 유린한 박 전 대통령의 휘호가 세종시를 대표하는 표지석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수치이자 모욕”이라고 거세게 비판하며 철거를 촉구했다. 지역 38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박근혜 정권 퇴진 세종비상국민행동본부’도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등과 공모해 국민이 위임한 권리를 사적으로 악용한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표지석 철거 운동을 진행했다.
반면, 당시 대통령의 파면도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인 만큼 표지석도 기록물로서 존치할 만한 의미가 있다고 철거를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이에 세종시는 시민 여론을 취합해 철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고, 결국 지난해 초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보여주는 측면이 있어 존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춘희 시장은 ‘페인트 훼손’ 다음날 철거 여부를 재논의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시장은 “표지석 철거 문제는 과거에도 찬반양론이 크게 대립되면서 잠정적으로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시민들도 또다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시민 의견을 들어 (철거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는 게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시는 이에 따라 시 홈페이지나 설문ㆍ여론조사, 지난해 도입한 온라인 전자투표 시스템인 ‘시민투표 세종의 뜻’ 등을 통해 표지석 철거 여부에 대한 여론을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당 세종시당은 3일 논평을 통해 “세종시가 시민 의견을 물어 철거한다고 입장을 밝힌 것에 유감을 표하며 원상 복구하고 엄중한 책임을 물으라”고 촉구했다. 이어 “이 시장은 이런 범죄행위를 규탄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유지키로 한 과거 결정을 재고하겠다고 했다”며 “이는 이 시장이 범죄행위를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표지석 훼손은 선거 국면에 접어든 이 때 정치적 필요에 의해 시민을 극단의 양쪽으로 갈라놓는 악의가 담긴 행위”라며 “수사 당국은 철저한 수사와 처벌로 다시는 세종시의 재물이 파손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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