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것들 해방 만세~!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시위한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서울 종로에는 어린이날 노래를 재치있게 개사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선거연령 하향 등 청소년 참정권을 주장하는 청소년 시민단체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일대에서 아동ㆍ청소년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시위를 주최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새로 쓰는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2016년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 집회 이후 373개 청소년 관련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했다. 선거연령 하향과 청소년 참정권 보장, 학생인권법 제정 등 청소년의 삶을 바꾸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이날 주최 측은 “어린이날이 처음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에서는 훈육과 보호라는 미명 하에 학생들을 체벌하며, 가정에서는 수많은 어린이가 가정폭력으로 죽거나 다친다"며 "심지어는 어린이를 배척하는 ‘노키즈존’과 같은 공간도 늘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발언에 나선 아동 청소년 활동가들은 “청소년이 직접 청소년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인천 강화군에서 온 강한길(17)군은 “어른들은 청소년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참정권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독립운동과 민주화 혁명 과정에서 누구보다 큰 역할을 해냈던 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들이었다”며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진다면 살인적인 입시경쟁이나 아동 청소년 착취 등의 문제들이 빠르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조민 노동당 청소년 당원은 “현재 국회엔 청소년이나 소수자의 존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며 “청소년 아르바이트 노동자나 특성화고 실습생들이 ‘껌값’ 노동력 취급받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아동 청소년을 직접 대변하기 위한 청소년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여성이나 트렌스젠더 등 약자나 소수자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김나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활동가는 “구글에 ‘여고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바로 알 수 있듯, 그간 여성 청소년은 성적 대상화되는 동시에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는 순수한 존재로 규정당해왔다”고 밝혔다. 김 활동가는 “앞으로 여성 청소년들은 그 어떤 기준으로도 제한되지 않는 독립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발언에 나선 한송이 청소년 트렌스젠더 튤립 연대 활동가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으로 살아가며 학교 현장에서 겪었던 차별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트렌스젠더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권리를 완전히 빼앗기는 공간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며 “학교를 다니고 싶어하는 대부분의 트렌스젠더 청소년들이 수모를 견디다 못해 결국은 자퇴를 결심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은 나와 내 친구들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멸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청소년 인권법 제정을 촉구했다.
연대발언을 마친 이들은 어린이날 노래를 개사한 시위 주제가를 함께 부르며 ‘2019 새로운 어린이날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어린이ㆍ청소년을 윤리적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고 △참정권을 비롯한 시민적 권리를 허하며 △충분한 자유 시간과 안전한 공간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보장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선언문을 발표한 뒤 함께 "어린이ㆍ청소년 해방 만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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