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러 정상회담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전용차 마이바흐의 운전석 뒤쪽 문으로 최선희(55) 외무성 제1부상(차관)이 내린 장면이다. 이 차량 뒷좌석엔 4명까지 탈 수 있어 실제 그가 김 위원장 옆자리에 앉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의 상관인 이용호 외무상(장관)은 조수석에서 내렸다. 조수석보다는 뒷좌석이 상석이다. 여성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으나 그가 얼마나 실세인지 가늠할 수 있다. 앞서 최 제1부상은 2기 국무위원회 구성 기념 사진을 찍을 때도 김 위원장과 같은 줄에 앉았다. 14명 중 홍일점이다.
□ 최 제1부상을 취재 현장에서 본 것은 2011년 7월 인도네시아에서다.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이 열렸을 때 당시 이용호 수석과 함께 차석으로 나왔다. 밝은 베이지색 바지에 하얀 하이힐을 신고 보라색 핸드백을 든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북한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게 드물던 시절이었다. 긴장하는 기색도 없었다. 김일성 주석의 책임서기(비서실장)를 지낸 최영림 내각 총리의 수양딸이란 설명을 듣고나서야 이해가 됐다. 중국 오스트리아 몰타 등지에서 유학을 해 영어가 능통하고 1990년대부터 통역을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실제 그는 2003~2008년 북핵 6자회담 통역을 맡았다. 2016년 국장, 2018년 부상, 올해 제1부상으로 승진했다.
□ 최 제1부상은 30년 가까이 줄곧 북미 협상 현장에서 내공을 쌓았다. 북한이 작정하고 키운 미국통이다. 북한은 이렇게 대남·대미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린 이런 외교관이 없다. 순환 인사에선 전문성보다 공정한 기회가 중시된다. 5년마다 대통령, 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며 정책 방향이 180도 바뀌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에서 보수 세력이 집권할 때 미국은 민주당이, 진보 정부일 때는 공화당이 득세하며 한미는 공조보다 엇박자를 반복했다. 북핵 협상에서 늘 밀린 배경이다.
□ 최 제1부상은 북한 내 미국통으로서 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 그가 어떤 길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김 위원장은 물론 북한, 나아가 한반도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 유학파인 만큼 북한이 핵을 내려 놓지 않는 한 경제강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잘 알 것이다. 마이바흐 뒷좌석에 앉은 그가 같은 유학파 김 위원장에게 해야 할 직언이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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