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밴드 선즈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 리더로 4일 내한 공연
오페라 같은 곡에 저항 메시지… “한국은 열정과 발효음식의 나라”
소파에서 뒤엉켜 노는 모습에 천진난만함이 가득했다. 유치원이 아니다. 3일 오전 서울 강남구의 호텔 인터컨티넨탈 코엑스 서울. 미국 할리우드의 청춘 스타인 에즈라 밀러는 인터뷰 직전까지 동료와 격의 없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상대는 그와 밴드를 하는 조시 오빈과 라일라 라슨이었다. 밀러와 라슨은 중학생 때 만나 15년 넘게 친분을 이어온 음악지기였다.
웃을 때면 양쪽 볼에 보조개가 활짝 피었던 밀러의 얼굴엔 익살이 가득했다. DC코믹스의 영화 ‘저스티스 리그’(2017)에서 연기한 플래시가 스크린을 찢고 나온 듯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가 시작되자 밀러는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밀러는 지난 2일 한국을 찾았다. 4일 오후 7시 서울 광장동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 공연을 위해서다. 밀러는 스크린 밖에선 인디 밴드 선즈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를 이끈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깜짝 클럽 공연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번이 밴드의 첫 정식 공연이다.
방문 횟수는 두 번이지만, 밴드와 한국과의 인연은 깊다. 밀러는 “‘한국 아빠가’ 있다”며 웃었다. 이들은 입국 첫날 저녁도 삼겹살을 먹었다고.
“(‘한국 아빠’의) 별명이 ‘뮤’인데 나이는 많지만, 우리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줬죠. 대중적으로 알려진 분은 아녜요. 목소리는 (미국 유명 가수인) 톰 웨이츠를 닮았고요. 만나면 한국어로 노래를 불러주죠.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하하하.”(밀러)
이들에게 한국은 ‘열정’과 ‘발효 음식’으로 각인됐다. 밴드의 유일한 여성 멤버인 라슨은 “지난해 한국에서 공연했을 때 팬들의 열광에 놀랐다”며 “왜 우리가 음악을 하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라슨은 김치 등 한국의 발효 음식 애호가이기도 하다.
‘저명한 아버지의 아들들’(Sons of an Illustrious Father)이란, 뜻을 종잡을 수 없는 밴드명처럼 이들의 음악도 독특하다.
2009년 1집을 낸 밴드의 음악은 ‘오페라 록’ 같다. 이글거리는 기타 연주에 주술처럼 얹은 목소리는 어둡지만, 낭만을 품었다. 노래 ‘유에스 게이’와 ‘익스트라오디너리 렌디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등의 악기 연주뿐 아니라 노래도 번갈아 한다. 고정된 포지션 없이 자유롭게 음악을 만드는 구조다.
음악에 실린 메시지는 저항적이며 철학적이다. 선즈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가 지난해 낸 앨범 이름은 ‘데우스 섹스 마키나: 오어 무빙 슬로울리 비연드 니콜라 테슬라’(Deus Sex Machina: Or, Moving Slowly Beyond Nikola Tesla)다. 데우스 섹스 마키나는 그리스 비극에 종종 등장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변용했다. 위기에서 인간의 힘을 뛰어넘은 신비로운 초월적 요소가 극에 등장해 사건을 해결해버리는 작법이다. 부제엔 미국 유명 전기 공학자인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이 나온다. 세기말적 분위기가 그득하다. 라슨은 “우리 사회의 여러 비극의 순간을 음악에 녹인 뒤 그 슬픔을 음악으로 함께 극복하고 싶었다”고 앨범 기획 의도를 들려줬다.
밀러는 특히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다. 밀러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전기 같은 에너지 사용에 있어 환경적으로 실패한 부분이 있다”며 “어떻게 건강하게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밀러는 미국 북동부의 버몬트의 농장에서 산다. 95에이커(약 10만평ㆍ38만㎡)가 넘는 대규모 초원이다. 밀러는 이곳에서 블루베리도 키우고, 염소도 기른다. 그는 9마리 염소 가족의 ‘가장’이기도 하다. 밀러는 “젖병을 물려 키웠다”며 웃었다.
밀러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에서 강렬한 연기로 얼굴을 알린 후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2016) 등에 출연한 스타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젊은 배우는 왜 도시를 떠나 외딴 자연에 둥지를 틀었을까. 밀러는 “자연에서 식물과 동물이 태어나고 죽는 걸 보면서 많은 성찰을 하게 된다”며 “이런 과정이 창작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염소 얘기가 나오자 라슨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옆에서 거들었다. “이 기사가 나가고 염소들이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 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마치 직접 낳은 아이를 떼 놓고 온 엄마의 얘기 같았다. 라슨은 “우리의 음악은 닭과 당근을 위한 음악”이란 농담도 했다.
선즈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는 한국 관객과의 두 번째 만남을 설렜다. 한국 공연을 위해 ‘선물’도 준비했다고.
“2000년대 유명했던 리듬앤블루스 노래를 커버해 부를 거예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연주할 건데 기대해주세요.”(밀러)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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